조세은 교우 간증문(부활주일)

김민주 2019.04.24 08:06 조회 수 : 205

부활절 간증문

지난 일 년 동안 간증 기회가 이상하게도 무산되며 안심하고 있던 찰나 다시 찾아온 간증의 시간은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간증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되던 시간이었습니다. 주님께선 내가 어떤 추억을 꺼내서 성도님들과 나누길 원하실지..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꼭 해야하는 일임을 생각할 때 이 간증이 저에게 굉장히 필요한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남편의 새로운 보직의 선택으로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재작년 11월에 왔으니까 벌써 1년하고도 5개월이 넘은 시간인데요. 저는 남편의 직장이 충청도에 국한된 이동이 있었기에 한번도 서울권에 이사 오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대전사람이기에 그곳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결정으로 주말 부부를 할 것이냐 이사를 올 것이냐는 갈림길을 만났습니다. 7월에 이미 남편은 서울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솔직히 저는 이사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우선은 5년 넘는 시간을 뜬눈으로 지새면서 우림이의 가려움을 함께 했던 저로서는 공기도 안 좋고 환경이 안 좋은 이사는 힘든 선택이었습니다. 이사를 결정할 때만해도 이렇게 우림이의 건강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저에게 아들이니? 남편이니?’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동안 아픈 아들이기에 고통스러운 순간들이면 무엇보다 아들의 건강을 우선시하며 살아왔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들이 아파도 남편을 우선시 해야한다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두려운 마음이 많아서 그때 얼마나 하나님께 떼를 썼는지 모릅니다. 제 마음이 완전히 결정되기까지 하나님께서 거듭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그 설득에는 내가 너의 하나님인데 너의 걱정을 모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저희와 긴밀히 지내시던 연로하신 시부모님에 대한 염려가 있었습니다. 항상 찾아 뵙고 함께 해야한다는 생각이 짙었던 저에게는 사랑하는 시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매주 한 번씩 함께하던 좋은 추억이 있는 저로서는 갑자기 이렇게 떨어져 지내면 어른들이 힘들어하지 않으실지에 대한 염려가 컸습니다. 또한 건강이 안 좋으셨던 시아버지를 염려하는 마음이 그렇게 컸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게다가 대전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친정 부모님도 많이 허전하실 것이 염려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부분도 나의 자녀는 내가 돌본다며 저의 할 일이 아직 그 부분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머리가 빨라 행동도 너무 빨리 가는 저에게 천천히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사를 결정하기 4개월 전부터 함께 말씀을 공부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아직 교회에 가기는 어렵고 묵상을 하면서 만나고 있었고 계속해서 권하는 중이었기에 이 친구와 함께 더 많이 나누어야하는 것이 아닌지 인간적인 생각도 있었고 또 아이들 학교에서 만난 학부모들과 공동체를 잘 형성하는 중이었기에 이렇게 떠나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편안하게 함께 만들어진 공동체 안에서 누리면 될 시기였기에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만들어가야 하는 새로운 삶에 대한 염려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저에게 자세히 가르쳐 주셔서 어디로 가든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아이들도 느끼고 배워야하지 않겠냐고 저를 권하셨습니다.

나의 이런 인간적인 여러 가지 염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이 남편을 통해서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가기 싫다고 말하는 나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직을 결정한 남편이 얄미롭기도 하고 게다가 이사하지 않아도 좋다고 이야기하는 단단함에 처음으로  나는 무엇을 가장 우선시하면서 살고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왜 남편은 저런 선택을 하는 거냐고 따지고 싶지만 이것 또한 결국 내가 죽어야 할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어떤 결정을 하던지 그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인데 내가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라고 생각하니 답은 너무나 뻔했습니다. 우림이가 더 아프더라도 양가 부모님께서 힘드시더라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어도 새로 하나님을 알게 된 친구가 어려움을 겪더라도 나는 남편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일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항상 나를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던 남편이 결정한 일이 노조라는 보직을 선택한 것을 보면서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설득하고 실망하는 마음을 잘 들여다보았더니 결국 남편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보다는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 보다는 그것이 좋지 않다고 말하면서 남편의 생각을 지지하고 듣지 못했던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사를 결정하면서 모든 일은 순적하게 되었습니다. 잘 되지 않던 주택 거래도 이루어졌고 엘리야를 가뭄이 없는 시내의 근원으로 인도하신 말씀을 따라 교우님의 도움으로 고촌이라는 좋은 동네를 소개받아서 오게 되었고 양친의 지지를 받아 마음이 편안해졌으며 아이들은 이곳에 너무나 잘 적응하였고 친구에게는 좋은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걱정했던 아들의 병은 하나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얼마나 빨리 이루어졌는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신 분이신지 저는 정말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머리로 세우신 남편의 결정을 따른 저는 모든 걱정에서 해방되어 구원을 얻었습니다. 더 좋은 것들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셨습니다. 이사를 와서 이 간증문을 쓰며 생각해보니 28살 적 저의 기도를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우연히 아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배우고 살아가는 작은 공동체를 경험했고 그 경험을 계기로 잘 세워진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성경을 잘 배우는 것 못지 않게 그 안에서 살아내는 선배들을 따라 가는 것이 얼마나 안전하고 편안한지 그 때 배우게 되었습니다. 시골교회에서 다시 생활하던 저는 그때  저도 광야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싶어요. 공동체를 잘 보고 배울 시간을 꼭 주세요. 그 시간이 길지 않아도 되니 꼭 저를 가르쳐주세요라고 기도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그 기도를 들어주신 때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너무나 감사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특별히 좋은 믿음의 선배들이 가득한 이 교회에 불러주셨습니다.

주일 묵상시간에는 한주동안 질문했던 하나님과의 대화를 누가 들었던 것처럼 나눔하시는 성도님들을 통해 답을 얻고 목요일날 하는 성경공부시간에는 혼자서 하는 성경공부가 아닌 함께 하는 풍성함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문자로보고 성경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성경이 움직이는 것 같은 이 교회에 있게 하신 하나님이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보고 배우고 맛보고 살아가도록 많은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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