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오늘 이런저런 사정으로 교우들이 많이 빠졌는데요, 안 빠졌으면 되게 많았겠다 싶어요. 우동식 교우님도 사정이 있으시고.. 담주는 조장모임이라 못하겠네요.
조성환, 정애자: 다음주는 못하겠네요.
박중현: 2주 후에나 하겠네요. 저번주에도 5명 정도 했는데 참 좋았습니다. 나상근 교우님 처음 나오셔서 너무 좋습니다. 이 자리는 누구를 가르키는 자리가 아니고 자유롭게 궁금한걸 나누는 자리니, 부담없이 참여하시면 될것 같다.
박중현: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5장이다.
나상근: 피비에스 식으로 합니까?
송진업: 피비에스로 해오면 됩니다.
박중현: 피비에스를 일주일간 개인적으로 해 오시면 되고, 혹시 카톡방 들어와보셨나요? 카톡에 들어와서 토론하시면 됩니다.
송진업: 카톡방 예전꺼는 못 보시니까.. 카톡방에 질문을 올릴려고 했는데 못했다.
박중현: 저도 카톡방에 질문 몇가지를 올렸는데, 그것을 보고 자유롭게 토론하자.
송진업: 답변을 카톡방에 올릴려고 했는데 못올렸다. 상익형제가 답변을 올린것 같다.
박중현: 네 저도 상익형제가 답변 단것 봤습니다. 제가 올려놓은 질문에 상익형제가 답변을 해줬는데..
송진업: 근데 8절에 질문이, 예수님이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그러자 9절에 병자가 나아서 자리를 들고 일어났다는 대목에서, 13절에 그 병자가 자신을 치유해준 자가 누구인줄 모르는데 어떻게 8,9절에 나온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일어났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잖아요.
박중현: 아, 송진업 교우님, 일단 문단을 나눕시다.
송진업: 네. 그럽시다
박중현: 일단은 5장 4절까지 했었는데요, 1장부터 4장까지의 흐름을 보니까 5장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네요. 요한복음 1장 같은 경우에는, 말씀이신 예수님, 창조자가 되신 예수님, 빛이 되신 예수님 등의 내용들이 있어서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서에 대한 주된 내용이었던것 같구요, 또 뒷장에 2장같은 경우는, 가나 지역에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때 민장로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든 그 의미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 자체가 새 창조의 역할이라는 설명이 새롭게 들렸습니다. 그 설명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새 창조에 대해 암시하신것을 좀 느낄 수 있었고, 또한 새 창조를 하러 오신 예수님이 이후에 어떤 역할들을 하는지 보니까 성전청결 사건이 있었고, 3장에 니고데모를 통해 예수님께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건지에 대한 말씀이 있어서, 우리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시고 우리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작업을 하시는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4장 같은 경우는 사마리아인과의 대화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신것 같더라구요, 새 창조의 역사속에서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이후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예수님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그 동네 주민들이 다 믿는것을 보듯이)이시고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분이시구나 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것 같아요. 그래서 5장을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이 어떤 역할을 하러 오셨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고, 이런걸 증거할 수 있는 분들이 어떤 분들이 있었는지 볼 수 있는 부분들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1장부터 쭉 보면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5장을 보면 6장에 비해서 길지 않는 47절로 되어있는데, 일단 문단을 나눠보신분 계시면 한번 나눠주시죠
정애자: 저는 5장은 1-4절까지 나눴는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어떤 못이 있었다. 이 부분은 환경을 나타낸것 같구요. 5절부터 사람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는 의미로 9절까지 나눴구요. 그런데 그날이 공교롭게도 안식일이어서 안식일날 치유한것에 대한 유대 사람들의 반응으로 뒤로 빼서 10-13절까지 나눴습니다. 이 부분에서 그 사람을 낫게 해 주셨으나 정작 그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14절에 비로소 예수님이 누군지 알게 되었습니다. 14절부터 18절까지는 예수님이 그 사람을 만나서 나는 누구고, 나는 일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안식일에 일을 하기 때문에 자기의 뜻을 잘못 알고 있고 나와 하나님의 위치는 동등된 위치에 있고 그런 말을 들으며 주위 사람들이 엄청 화가 났다 라는 내용이 있었구요. 동등된 위치가 권위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 권위가 19절부터 시작되는 두번째 문단에 이어지는 것 같다. 예수님이 아주 자세히 내가 이런 권위를 가진 것은 하나님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부분을 26절까지 잡았어요. 근데 26절 앞 부분에는 내가 하나님과 동등되다라는 것과 뒷쪽은 27-30절까지 심판의 내용같은데, 믿는자와 믿지 않은 자가 모두 심판을 받는데, 믿는 사람은 생명의 심판을 받고, 악한 사람은 악함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 라는 내용으로 그렇게 나눠봤구요, 그리고 30절 이후에 오는 세번째 단락으로 예수에 대한 증언은 중간에 자를 수 없더라구요. 예수님의 증언에 대해 너희들이 믿지 않는다 (죽이려는 자들에게 하는 말씀). 너희들은 모세5경도 믿지 않고 나도 믿지 않는다 라는 내용으로 뒤에 그렇게 크게 묶었습니다.
송진업: 저는 큰 틀에서 보면 같은 이야기인데, 저는 한가지로 본다면, 예수님이 나는 사람들을 고치고 생명을 주러 왔다라는 내용을 5장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굳이 나누자면 크게 두문단, 1-18절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는 이야기, 그리고 19-47절까지는 예수님이 하시는 이야기, 그러니까 설교죠. 근데 첫번째 나눈 것에 대한 세부문단은, 1-9절 상반절까지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이야기를 하고, 9절 하반절부터 18절까지는 안식일 논쟁을 하는 내용인것 같다. 그리고 19-47절은 세개로 쪼개봤다. 19-32절까지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시는 일, 즉 생명과 심판에 대한 내용 같고, 33-38절까지는 세례요한보다 더 큰 증거가 있다며 예수님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증거하는 내용 같고, 39-47절은 그런데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다. 이런 내용으로 나눠봤습니다.
박중현: 혹시 더 말씀나누실 분은 없나요
나상근: 저도 중간에 한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저는 1절부터 좀 의미있는 이야기들, 예를 들어 공관복음에는 나오지 않는 예루살렘에서 병 고친 이야기라든지, 양의 문 내용이나 베드자다 못의 다섯 개의 행각 내용 등은 저자인 요한이 어떤 의도를 갖고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베드자다'는 자비라는 뜻인데,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할 때 그 크다는 것을 예수님의 자비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랑이 다섯 칸이라는 것도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에 보면 요셉이 친동생인 베냐민에게 다섯 배 더 주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요? 양의 문이 도살할때 양이 한바퀴 돌고 다시 양의 문 입구로 돌아오는거더라구요. 그러니까 양의 문이 예수님을 상징하는 말이라는 학설도 있고, 일어나라는 말 자체가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인데 바로 부활을 뜻하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5장의 문단은 병이 진행된 문제점과 안식일에 대한 유대인들의 의식을 문제삼는 것, 예수님을 죽이려는 모의 이렇게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누었습니다.
박중현: 우선 그럼 제가 문단을 나눠보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하죠. 저는 1-18절까지는 안식일에 병 고치는 내용들이 주로 많이 들어있는 것 같구요, 19-29절까지는 하나님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도 주시고 심판을 예수님을 통해서 행한다는 내용이 있구요. 즉 죽은 자를 심판하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 그렇게 봤구요. 30-47절까지는 그런 예수님에 대한 증거들, 어떤 증거들이 있는지. 그런 내용들이 적혀 있는것 같아서... 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우선 1-18절까지 쭉 보시고 궁금한점 있으면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카톡에서 4가지 정도로 질문했는데, 이 중에 3개 정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것 같아서, 그중에 중요한것 하나를 좀 언급하고자 하는데, 예수님이 후에 유대인들의 핍박을 무릎씀에도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는 이유가 뭔지를 알고 싶습니다.
(1-18절)
나상근: 우리가 쉽게 생각해보면 될것 같다. 왜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었나요.
박중현: 병 고친걸로만 생각하면 굳이 주일날 안 고쳐도 되거든요. 그데 왜 굳이 안식일에 고쳤는지.
나상근: 우선 상황을 보면 안식일날 예수님이 들어가니까 병자들이 어떻게 합니까? 그 병자는 안식일날 무조건 안식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병자는 안식일날 안식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안식일날 왜 고치셨냐면 안식일날 진짜 안식을 해야 하는거죠. 병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거죠. 즉, 예수님께서 오셔서 안식일날 병자가 있으니까 병자를 통해서 안식일날 안식의 의미를 직접 보여주신거죠.
조성환: 그러니까 예수님이 안식일의 참 안식이다. 예수님 자체가. 안식일을 예수님 자신과 연관시키면서 치유하면서 회복시켜주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상근: 우리가 안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거든요. 창세기에서 보면 6일을 창조하시고 7일에 안식하면서 완전한 창조, 더 이상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생각해보면 1,2,3,4,5,6, 777이 계속 가는거지 8이 되고 이런건 아니다. 그렇기에 7로서 다 끝나야 하는것이다. 그러면 안식하는거는 예를 들어 우리가 창세기에서도 나오고 안식일 사례에서도 나오듯이, 유대인들 쪽에서 생각하는게 무엇인가 하면 우선 안식일이 첫 창조를 기념하는 날이고 그리고 마지막 종말에 완전한 창조로서 바라고 소망하는 것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하면 아무 걱정이 없어야 하고 아무 병도 없어야 하고 오래 살아야 하잖아요. 즉, 뭐냐면 하나님 속에 들어가야 하는거죠.
송진업: 그런데 박중현 교우님 질문은, 예수님이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을 위험을 무릎쓰고 치유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내용이 아닌가.
나상근: 그러니까 안식의 의미가 무엇이냐. 참 안식이 무엇이냐 라는걸 알려주시려고 하시는거죠.
송진업: 그러니까 예수님은 나중에 박해를 받을 걸 예상하던 말던 그건 상관없다는거네요.
나상근: 그렇죠. 너희들에게 참 안식일이 무엇이냐. 나를 통하지 않으면 참 안식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병자를 고쳐줬잖아요.
송진업: 그러면 박중현 교우님은 본인 질문에 대해서 해소 되었나요?
정애자: 이런거 다 알면서도 물어본건가요?(웃음)
박중현: 반반이다.(웃음)
조성환: 교육적인 차원에서 물어본것 같다.(웃음)
박중현: 토론의 활성화를 위해서 물어봤다. 최종택 교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최종택: 말씀하신대로..
박중현: 토요일날 지도자 양성 모임하잖아요. 창세기 하잖아요. 창세기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물어본것도 있다.
송진업: 거기 자리도 비좁다고 그러더라구.
정애자: 그래서 안 오시는거에요?(하하하)
송진업: 왜 안오냐고 물어보시더라구. 아니, 할말이 있어야지~ 멀기도 하고(하하)
조성환: 안 가셔도 되요.(웃음)
송진업: 그런데 우리 5장의 주제가 보면 안식일에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잖아요. 1장 후반부부터. 근데 보면 2장에 와서 가나부터 계속 패턴이 있는것 같아요. 그래서 요한복음 21장까지 요한이 끌고 가는 패턴이 있는데, 가나 혼인잔치 다음에 3장 22절에 유대땅으로 가잖아요. 거기서 세례에 대한것을 이야기하고 4장에 이어서 성령과 진리로 해야한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러면서 5장에 와서 안식일 병자 고치면서 논쟁이 붙은건데, 사실 나 선생님이 말씀하신게 다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6장도 보면 그렇구요. 7장도 그렇고 다 패턴이 어떤 패턴이냐면. 1장 29절에 이틀날 하면서 나오거든요. 그리고 35절에 이틀날, 43절에 이틀날. 그리고 2장에 사흘째 되던날 이렇게 나오는데, 1, 2장 12장 28절까지 이 패턴이 7번 나온다. 그리고 20장 26절에 보면 8일 후에 라면서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요한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넣어놓은거에요. 7일이라는 숫자에 맞춰서 8일 이후에라고 쓴 것이고 그리고 21장 1절을 보시면 이 일들 후에 라고 나온다. 이 일들이니까 7가지 패턴의 일들 후에 를 합해서 이야기하는건지. 그 7이라는 숫자를 맞춰놓고 8일을 7의 숫자에 맞춰서 이야기하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패턴이 그렇게 나오는것 같다. 그래서 그 틀 안에서 보면 다 맞는 이야기다. 세부적으로 보면 그런 내용들인데, 5장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병 고치면서 안식일 이야기가 나오고, 예수님이 설교하는것들이 주된 내용인것 같은데, 5장에서 질문을 추가로 드리자면, 14절에 보면 예수님이 고쳐주시면서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일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라 이런 말을 보면서, 이 병자가 죄를 범해서 38년 동안 이렇게 앉아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중현: 그렇게 봐야하지 않을까요? 죄를 범했기 때문에..
송진업: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겠죠.
박중현: 그런데 이 안식일은 보니까 죄하고 연관이 되어있는 것 같다.
나상근: 시편 103편 3절을 보시면 주님은 너희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분 모든 병을 고쳐주시는 분, 그러니까 죄하고 병하고는 좀 동률적으로 보는 것 같다. 물론 요한복음 9장에서 보면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고 하잖아요 그죠? 소경에 대해서.. 하지만, 하나님 나라가 왔을때 제자들을 보내서 제자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시냐면 제일 처음에 병 고치고 귀신 쫓으라고 하시거든요. 가서 제자들이 너 죄를 사했다 라고 이야기하는것보다 병을 고쳐주는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더 실감나게 볼 수 있는 방법이잖아요. 일단 병과 죄는 동일선상에서 보고 진행하는것이 좋은것 같다.
송진업: 그러면 19절에 보면, 진실로 진실로 이렇게 두번 반복하잖아요. 그런데 원어로 보니까 아멘 아멘 이거든요?
나상근: 이게 앞에 붙는 이유가 뭐냐하면,
박중현: 우선 18절까지만 이야기하자.
송진업: 아, 18절까지요? 18절까지의 제 질문은 그거에요.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셨는데, 예수님의 말로 봐서 이 병이 죄와 관련이 있는지가 암시되어있는것 아니냐 이거였다.
박중현: 저도 궁금했다.
나상근: 결국 안식하고 나중에 다 묶으놓으면, 하나님 나라가 왔다 하는것 자체, 구분되었다는 자체, 1차적으로는 병이 낫고 하지만 예수님이 결국 원하시는건 영적으로의 온전함, 그게 2차적인 뜻이거든요. 1차적으로 병이 낫는걸 보여줘야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는것을 볼 수 있으니까.. 즉,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1차적인것은 병이죠.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병을 고치고 귀신도 쫓으라고 하신게 하나님 나라가 도래함으로서 병이 낫고 하는 그 자체를 봐야 한다는 뜻이고, 또 우리가 안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완전한 새창조가 되서 우리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을때가 참 안식이잖아요. 그때까지는 우리가 병 고쳐나가는 건 당연한거고, 그래서 예수님이 38년된 병자를 고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시 병 안 걸린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송진업: 그래서 죄를 범했다는것이 17절에 일한다고 나와있는데, 이것이 무슨 일이에요? 저도 어느정도 짐작하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박중현: 제가 토요일날 들은 내용인데, 창세기에서 들었을것 같은데, 그 내용과 관련이 되어있는 것 같다.
최종택: 그 내용은 그 내용이고 여기 5장에서 보면, 5장 1-18절까지 보면 주제는 안식일인거 같은데, 안식일을 예수님이 왜 이야기를 하셨을까? 이건 당시 이때에 유대인들이 참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안식일에 대한 개념을 잘못 알고서 율법적으로만 살고 있으니까, 그게 안타까운 상황에서 예수님이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시면서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심으로서 이땅에 참 안식을 주겠다 라는 것을 말씀하시는건데, 이 안식일을 예수님이 말씀하심으로 인해서 유대인들이 오히려 더 핍박하는 도구로 삼는데, 이것을 보면서..
송진업: 제 질문은, 아버지께서 일하시는데 나도 일을 한다. 이게 과연 어떤 일이냐 이거죠.
나상근: 유대신앙에서 어떻게 보냐면, 하나님이 안식일에도 일을 하시는지 안하시는지 연구했는데, 안식일에도 사람이 태어나고, 죽잖아요. 그래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일을 하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결국 어떻게 생각해야 하냐면,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셨는데 쉬셨잖아요, 사단이 들어와서 아담이 타락을 해서, 만약 아담이 타락을 안했다면, 영원하게 같이 살고 낙원에서 살 수 있는건데, 죄를 지었기 때문에 타락하고 고난이 오고 문제가 되기 때문에 7일이 무슨 이야기냐면 6일까지 창조하고 7일은 완전한 창조보다는 새 창조. 영원한 안식으로 하는, 그걸로 봐야 할 것 같아요.
송진업: 그러면 18절까지 안식일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했는데, 내 질문의 핵심이 뭐냐면 그 일이 뭐냐가 질문의 핵심인데, 사실 답이 있는데 그냥 물어보는거에 대한건 의도가 있는거거든요.
박중현: 그러면 송진업 교우님이 어떤 일을 하는지 말씀해 보시죠.
송진업: 나선생님 최선생님 이야기 하신것도 다 들어가 있는 내용인데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38년된 병자가 못에 들어가야 하는데 넣어줄 사람이 없다고 해서 믿음이 없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믿음이 없는게 아니라 몰랐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 사람이 예수님인지 누군지 몰랐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병자가 뭐라고 이야기했냐면 저 천사가 내려오면 그때 물에 들어가야 하는데 넣어줄 사람이 없다 라고 이야기 했고 예수님이 그때 더 큰, 그 사람을 직접 치유하는 더 큰 일을 했잖아요. 그 사람을 물에 넣어주거나 한게 아니잖아요. 이건 제가 봤을때는 정말 엄청난 사건이거든요. 그런 후에 예수님이 죄 짓지 말아라 더 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라고 말씀하셨고 나중에 다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서 이 사람이 예수다 라고 말하고 다니면서 문제가 발생한거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일이 지금 38년된 병자를 치유한게 되는거죠. 그죠? 크게는 심판, 생명 이런게 다 일인데, 제가 여기서 읽혀지는건 이렇게 읽혀집니다.
최종택: 일이라는게 결국 구원사역이죠.
송진업: 그렇죠.
최종택: 그 과정을 결국 예수님이 하신다는 거고, 그러면서 정말 유대 사람들이 새 창조로 가는게 아니고 율법에 얽매여 그 틀에 얽매여 있는 상황을 예수님이 깨는거죠. 그러면서 율법을 털고 일어서서 새 창조의 길로 가라라고 하시는데..
송진업: 그런데 안 믿어요 사람들이.
박중현: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17절에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을 하시는 그 일 자체가 새창조라고 이야기하시는데 이 문맥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것인지, 물론 병자를 낫는것 자체가 아닌것 같고
최종택: 그러니까 병자한테 앞으로 죄를 또 지으면 또 병에 걸릴것이다 라고 말씀하신것처럼. 새 창조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게 아니고 구원에 이르는 과정이잖아요. 그리고 그 과정 마지막날에 구원으로 갈것인가 심판으로 갈것인가 그건 주님이 결정하실 상황이고, 이때 이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다시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은 이 구원 사역에 동참해서 의롭게 살라는 말씀이겠죠.
송진업: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부모님을 불러서 유대인들이 물어봐요. 성경에 있는 내용이니까, 유대인들이 물어봐요 진짜 너 아들이 맞냐. 그런데 뭐라고 하냐면 오히려 그 유대인들은 교육한다고 너는 그의 제자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고 하죠. 즉, 이렇게 병자들도 예수님께서 자리를 들고 일어나게끔 겉으로 이렇게 치유를 해주시지만 결국 속까지 예수님 믿는데까지 나아가는것은 ..
나상근: 그런데 이걸 생각하셔야 하는게, 메시야가 오실때 유대인들이 생각하는것은 눈이 뜨이고 이런걸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병이 고쳐지는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해왔던 일이고 새창조, 참 안식까지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죠.
정애자: 아까 말씀하신것 중에서 이 사람의 죄 때문에 이 사람이 병에 걸린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보지 말고 이 사람이 어떻게 보면 대표에요. 대표라고 생각해야지 이 사람이 죄를 지어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면 안될것 같아요. 죄와 안식과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어요.
박중현: 그런데 이 사람에 한해서는 14절에 보면 그 이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만나 더 심한게 생기기 전까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시는걸로 봐서는, 우리가 똑부러지게 무슨 원인으로 죄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4절에 의하면 이것은 죄와 관련해서 봐야할것 같아요.
나상근: 이건 이렇게 생각 하셔야 해요. 우리가 아담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을때는 병도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과 떨어진 이후로는 병도 오고 궁핍도 오고 문제가 생긴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안식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이 하나님께 의지만 하면 안식이거든요. 모든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되는거거든요.
박중현: 근데 이 상황에서는, 안식이라는 말은 죄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끊어져 있었다가 그것이 회복이 되면서 그 안에서 우리가 자유를 누리는것이 안식이라고 볼때 이 문맥을 보면 14절을 통해서 38년동안 가졌던 질병이 죄를 인해서 얻었다고 보았고, 그래서 그 죄 자체에 대해서도 예수님이 해결해 주셨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름대로 38년동안 자기 스스로 왜 이 병에 대해 걸렸는지 생각도 해보았을 것도 같고 그래서 자신의 죄에 대해 온전히 해결하고 예수님께서도 이 사람의 죄에 대해서도 말씀하신것 같고.. 그러니까 죄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정애자: 죄와 관련이 있다는건 되는데, 너가 38년동안 있는건 죄 때문이다 라는건 그 사람을 정죄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보지 말자는 거죠.
송진업: 우리말 성경 역본에는 정애자 선생님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보아라 너가 다 낫었구나. 더 심한 병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라고 하거든요, 그러는거 보니까 ..
박중현: 그러니까..
나상근: 그렇게 보시라는 내용이 아니고 죄와 병이 관계가 있다고 보시구요, 9장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죄와 병이 꼭 연관있다고 보지 말라라고 하셨잖아요.
박중현: 그런데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른거죠. 이 본문상에서 보자는 거죠.
나상근: 기본적인건 병이 죄와 관련이 되어 있죠.
박중현: 아 그러니까 본문 안에서 보자는거죠.
송진업: 이렇게 한번 봐보세요. 보라 너가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서 악한일이 네게 일어나지 않게 하라. 어떤 뉘앙스입니까?
박중현: 그러니까 죄를 범했고, 이제 죄 사함을 받아서 앞으로 다시 죄를 짓지 말라는 논조로 들려요. 그러니까 어쨋든 여기서 병자가 걸렸던 병과 그 사람이 지었던 죄하고는 관련이 있다고 보거든요.
나상근: 기본적인건 우리가 죄하고 연관되어야 하지만, 메시야가 오면 병자도 눈 딱 뜨고 그러기 때문에 그 자체가 꼭 죄와 관련되지 않는다는걸 인식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9장에서도 너무 꼭 죄와 연관시켜서 이야기하지 말라고도 하셨구요.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죄와 병은 연관이 되어 있는거고, 그거는 우리가 인간으로 하나님과 멀어진 상황에서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인거고,
정애자: 그러니까 그 죄를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나상근: 결국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죄라는건 그냥 포괄적인 영적인 죄를 말씀하시는거다. 그래서 너는 앞으로 거듭나서 그렇게 살아라 라는 의미이다.
정애자: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떨어뜨리지 말아라 라는 의미이지 그 사람의 죄와 연관시켜서 이야기하시는건 아닌것 같다.
송진업: 박중현 교우님 아까 질문 그냥 넘어간것 같아서, 그거 해소되었어요? 그 질문에 대한..
박중현: 어떤 질문이요?
송진업: 4번 질문이요.
박중현: 아, 4번은 아까 해결되었습니다. 그게 제일 큰 주제인것 같아서 제가 꺼내봤습니다.
송진업: 질문 적어왔어요? 질문 적어오라고 했는데
박중현: 그러면 송진업 교우께서는?
송진업: 저도 질문 많이 했잖아요. 19절부터는 굉장히 많아요.
정애자: 18절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아요? 18절이 19절로 넘어가기 위한…
나상근: 나는 그 부분에서 질문이 전혀 안 생기는데?
박중현: 저 한가지 또 질문이 있다면,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7일날 안식일에 쉬셨고 또 너네들도 쉬어야 한다고, 그런 말씀이 있는데, 17절에 보면 이제까지 일하신다는 말이 있어서..
정애자: 그러니까 아까 말씀하신대로 새 창조를 계속 한다는거다.
나상근: 신명기에서 출애굽쪽으로 해석하거든요? 제 7일 안식일 자체가..
박중현: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7일날 쉬셨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상근: 제일 처음 근본적으로는, 유대교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셨을때 완전한 창조를 하셔서 그때부터 일할 필요가 없죠. 아담이 아무런 고민도 없으니까.. 이건 오해를 하시면 안되고 비유적으로 말씀드린건데, 근데 아담이 죄를 짓고 죽게 되면서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계속 일을 하게 되고 그런거죠. 결국 그러면 우리에게 뭐냐면 나중에 참 안식에 들어간다는건, 새 창조가 되면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면서 그때부터는 하나님께서 일할 필요가 없어지신다 라는 의미 같아요.
송진업: 그런데 그 설명은, 세대주의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신것 같아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사람들이 완전하게 되지 않았음을 내다보시고..
나상근: 아니 그건 아니죠.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이 보내지셨을때 예수님을 죽이라고 해서 보낸게 아니잖아요. 자유의지로 아담이 죄를 안지을 수도 있는거잖아요.
송진업: 그건 당연한거지 그런데 창세기 2장 1-3절에 쉬는게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개념을 6일을 불완전했기에 이렇게 했다 라는 후속조치를 취하셨다는 그런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거에요.
나상근: 그렇죠. 왜냐하면 안식하는 것 자체가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스탑이 아니라 레스트, 쉬는거잖아요. 하는 일 없이 쉬시는 거거든요. 결국 우리가 참 안식에 들어가는게 뭐냐하면 쉽게 이야기해서 레스트 하는거죠. 우리가 안식일에 일 안하고 쉬고 이러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는게 중요한 거거든요.
송진업: 그걸 일이라고 보면 안되나요?
나상근: 그건 일이 아니죠. 참 안식인거죠.
송진업: 여기 17절에 아버지께서 일하신다고 나오니까..
나상근: 그러니까 그게 새 창조 이야기죠. 일하신다는게 뭐냐하면 새 창조 일인거죠. 그래서 나중에 참 안식에 들어가는거죠.
송진업: 그런데 창세기 2:1-3절에 나오는 제 7일 안식하셨다 그건 그럼 어떻게?
나상근: 그건 나중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한거에요.
박중현: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거죠.
나상근: 그렇죠. 나중에 윤장로님 안식일에 관한거 들어보면..
송진업: 다 들어봤죠. 광야교회에서 당연히.
나상근: 거기에서 그런 이야기 나와요. 그때 창세기 때 나오고 신명기도 나오고, 그건 출애굽때도 나오거든요.
박중현: 최종택 교우님이랑 이렇게 두분이 좀 이야기 해주시죠.
송진업: 핵심을 이야기하자면 예수님이 죄인의 대표인, 병자를 고치셨잖아요. 그렇게 해서 아버지도 이렇게 일하시니까 나도 이렇게 일을 한다.
박중현: 그건 죄에서 해방시켜줬다는 의미가 있는것 아닐까요?
송진업: 다 포함되는거죠
박중현: 그게 더 큰 주제 아닐까요?
송진업: 아니, 크든 작든 간에, 다 통틀어서 우리 영혼만 구원합니까? 나중에 우리 육체도 구원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육신도 중요하고, 영혼도 중요하고 그렇잖아요. 사람이 영혼만 있나요 육체도 있지. 그래서 지금 38년 병자를 고치신 것은 그것을 다 포함한거라고 봐요. 그래서 이 사람을 새롭게 온전하게 만든거지. 근데 정애자 선생님이 딱 이건 병자는, 죄인의 대표를 말한거다 라는, 지난주에 공부한 부분에 나오듯이 유대인의 대표, 왕의 대표, 그거와 같은 맥락 같아요.
박중현: 저도 어떻게 보면 4장에 사마리아 여인..
나상근: 그 두가지를 보셔야 되요. 니고데모를 선택한거하고 사마리아 여인을 선택한거하고요. 니고데모는 유대인 중에서도 최고봉이잖아요 사마리아라고 하는건 이스라엘에서는 최하층이거든요. 예수님께서도 다섯 남편에 대해서 말하면서 사마리아를 무시했잖아요. 그만큼 사마리아 종교 자체를 저질로 보신거죠. 그래서 니고데모는 유대인중에서도 최고봉이고,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 사람들에 있어서는 최하층의, 그 두가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말을 하신거죠.
박중현: 저도 대표성에 있어서는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개인적으로 사마리아 여인하고 병자하고 공통점이 뭐가 있냐면, 새로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라고 해야하나? 그 회복에서 안식을 누리잖아요.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님께서 너가 내가 메시야인줄 알았으면 나에게서 구했을거라고, 그러니까 병과 관련된건 병과 관련해서 해석해야겠지만, 이 병자도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관계에서 보면, 사마리아 여인과 회복 차원에서는 똑같은 안식에 이르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같은 경우에는 병자가 죄로 인해 생긴 병이라고 생각해볼때 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바로 참 안식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17절에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일하신다라고 하신건 계속 세상적으로 구원하는 사역을 말하는것이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일을 나도 지금 하고 있다 라는 뜻인것 같습니다.
정애자: 그게 7째 날에 하신 일이잖아요. 그게 진짜 쉬었다 이런게 아니고, 상징적으로 새 창조의 사역을 계속 하신거지. 무슨 말 그대로 쉰게 아니죠. 아까 그거 여쭤보셨잖아요. 그래서 보니까 그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어요. 그게 안식의 의미이고, 새창조의 의미이죠. 그래서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스탑이 아니고 계속 일하시는거지. 그래서 새창조로 보고 안식으로 보면 더 이해가 잘 되는것 같아요.
박중현: 구원 자체가 안식이니깐요
정애자: 그렇죠. 구원사역 자체가 안식이니까.
송진업: 조장로님 코멘트 없이 나가셨나보네요
정애자: 아니다 아직 안 나가셨다.(하하)
송진업: 최선생님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최종택: 아니에요. 아까 중요한 말씀 다 하신것 같던데..
송진업: 그러면 정애자 선생님은요?
정애자: 아까 저도 정리 잘했죠?
박중현: 네 잘하셨어요. 아까 정애자 선생님이 질문하시던거 다시 말씀해 보시죠.
정애자: 아까 18절이 왜 19절하고 연결된다고 그랬던게, 안식일을 범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로 불러서 자신을 동등한 위치로 놓았다. 그래서 그 권위를 말씀하신거라서 그런것 같습니다.
박중현: 그럼 그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도 될까요?
정애자: 네
(19-29절)
박중현: 송진업 교우님이 두번째 단락에 질문이 많다고 하셨는데(웃음)
송진업: 아, 2주만에 하는 거라서요. 제가 카톡방에 올렸죠? 진실로 진실로 라는 단어가 3번 정도 나오는데, 제가 다 찍어서 올렸거든요?
나상근: 이게 카톡방에 그게 있는데 자꾸 지워져서요.
박중현: 카톡방이 중요한데.
송진업: 제가 한번 볼게요.. 왜 요한복음에 진실로 진실로 라는 말을 왜 썼냐.
정애자: 맥 시리즈에 답이 나오더라구요.
송진업: 그리고 22절에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오직 아들, 나 자신에게 맡기었다. 물론 다 답이 있지만 무슨 심판일까? 라는게 제 두번째 질문이고, 24절에도 진실로 진실로 두번 나오네요. 이 패턴이 계속 나와요. 그리고 25절에도 진실로 진실로 라는 말이 나오고, 그리고 25절에 듣는자는 살아나리라 라며 아버지께서 생명이 있음과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라고 나와있고, 여기 생명이라는 게 무엇인가? 라는게 3번째 질문이고,
박중현: 일단 하나씩 할까요?
나상근: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하는걸 잘 안하시죠. 인자라는 말이 처음 나오고, 제일 처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7개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과연 누구냐, 하나님과 그 아들이 동등하다 라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접근해야 하는거죠. 아들이라고 하는게 그 개념을 잡을때 단순히 아들이라고 하면 안되고 우리가 아들이라고 할때 무엇을 남겨줍니까?
송진업: 유산? 상속?
나상근: 네, 상속을 남겨줍니다. 아들이라는 개념은 상속이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당연히 아버지를 보고 그대로 하는것이기 때문에, 상속하는 개념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을 잡고 있으면..
박중현: 일단은 질문하는 것에 대해 대답하는걸로 진행을 해보죠.
송진업: 뭐에요? 맥시리즈에는 뭐라고 나왔어요?
정애자: 맥시리즈에서는..
송진업: 어이구, 우리 상익 형제 왔어요.
(일동 웃음)
박중현: 일단 송진업 교우님 첫번째 질문부터 답해보죠.
송진업: 우선 진실로 진실로 라는 부분이 두번 나오거든요? 24절에도 25절에도 나오는데.. 요한복음에도 많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중요한걸 이야기 할때 쓰는 것 같은데,
나상근: 중요한걸 나타내기보다, 우리가 항상 아멘 아멘 하는 것 자체가 진실로 진실로 이잖아요? 이게 뭐냐 하면은, 예수님이 자신을 메시야로 나타내는 간접적인 표현이다 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멘 하는거는, 그만큼 권위를 갖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기도쭉 한다음에 아멘 이라고 하면서 기도하지, 옛날 초대교회에서도 아멘하지, 예수님만 처음부터 아멘 하시거든요? 먼저 아멘아멘 하고 쭉 나가는게 그만큼 예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거라고 생각해요.
박중현: 잠깐만 근데 질문의 요지가 뭐죠? 그러면 진실로 진실로..
송진업, 정애자: 왜 이 표현을 자주 반복해서 썼냐 이겁니다.
정애자: 맥시리즈에서는 오직 예수님만 쓰셨다고 하네요. 아까 나상근 교우님이 든 메시야 라는게 적절한 표현같아요. 근데 여기는 오직 예수님께서 쓰신 진실로 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라는 맹세와 동등한 말이래요. 그리고 예수님만 이런말을 쓰셨다니까.
송진업: 저는 이 강의를 에스라에 조성민 교수님한테서 들었는데요, 뭐냐면 이게 선지자적 정형어구래요. 그러니까 같은 이야기에요 사실. 나선생님이 하신 말씀하고..
나상근: 그리고 여기서 인자라는 말이 있잖아요. 27절에 보면 아들이 인자이기 때문에, 메시야라는 표현인거죠.
송진업: 상익 형제, 늦게왔는데 환영하고, 1절부터 18절까지 끝났고 문단 나누기는, 19-29절, 30-47절까지 이렇게 들어갔어요.
임상익: 지금은 몇절하고 있는거죠?
송진업: 19절 하고 있어요.
박중현: 진실로 라는 표현을?
정애자: 예수님만 쓰셨대요.
박중현: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인데, 송진업 교우님은 왜 한번이 아니고 반복적으로 했냐? 라는 거 아닌가요?
나상근: 우스개소리를 하자면, 중생을 강조하니까(하하)
농담이구요, 중요한 걸 강조하기 위해서 하는것 아닐까요?
송진업: 네, 중요한걸 강조하기 위해서죠.
박중현: 네 강조하기 위해서.
송진업: 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두번이나 말씀하실까 라고 했을때 중요한걸 강조하기 위해서 말씀하신거죠.
상익 형제 어때요?
임상익: 저도 그렇게 강조하는 차원에서 말씀하신것 같아요.
송진업: 역시, 상익 형제가 오니까 너무 좋네.
(일동 웃음)
정애자: 근데, 강조 정도가 아니고, 나상근씨 말씀에 의하면 메시야 로서의 표현이다. 여기 제목이 권위잖아요.
나상근: 내가 메시야다 아멘 아멘 이러는게 예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박중현: 두가지 다 이렇게 봐도 되겠네요. 두번째 질문은 무엇이죠?
송진업: 두번째 질문은 22절에 대한 질문인데,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시지 않고 심판을 아들에 맡겼다는 이야기인데..
나상근: 우리가 그럼 다니엘서를 찾아볼까요?
송진업: 아니요 여기 27절하고 30절에도 나와요 심판에 대한 내용은… 그럼 이 질문 말고 다른 질문할게요. 26절에 있는 질문, 하나님 속에 있는 생명이라는게, 무엇인지 자기 언어로 표현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육체적인 생명을 이야기하는건지, 아니면… 여기서 분명히 생명과 심판을 대비해서 이야기 하는듯한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토론 좀 해 보고 싶어서요. 상익 형제 어때요? 26절에 있는 생명이 뭐에요? 사람 생명인가요? 의사니까 잘 알겠네
(일동 하하)
임상익: 그건 아니구요, 여기서 보면 25절에 죽은자들 이라는 표현도 나오고, 살아가리라 라는 표현도 있고, 생명이란 단어는 우리가 지금까지 계속 다루었던 빛과 어둠, 이런 의미인것 같아요. 생명은 곧 빛이고, 이 빛이 곧 아들인 나에게도 있고 또 나아가서 27절에, 여기서 메인 토픽이 아들의 권한이잖아요? 나한테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 이런게 약간 메인 토픽인것 같습니다.
박중현: 생명을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조성환: 태초에 창조하실때, 사람한테 생령을 불어넣으셧으니까, 유대인들은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라는것을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것 같아요. 생명이 여호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송진업: 그러니까 논리가 22절부터 계속 심판 이야기 하거든요, 그러면서 생명이 끼어 들었는데, 심판 이야기가 30절까지 나오거든요.
조성환: 심판 이야기하다가 생명 이야기를 왜 했냐?
송진업: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대비되는 이야기로서 우리에게 메세지를 주는 거죠.
나상근: 생명과 심판은 하나님의 권한이기 때문에 결국 이 이야기를 하는게, 예수님이 심판한다, 생명을 준다는걸 이야기 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는걸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박중현: 근데 19절이 왜 들어갔을까요? 19절하고 29절이 병 고치는 내용인데, 이게 왜 들어갔는지 한번… 보는 것도 괜찮겠는데요?
조성환: 전체적인 문맥에서?
박중현: 네, 심판이라는 말이 왜 이 병 고치는 사건 이후로 왜 나오는지
나상근: 요한복음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걸 강조하는 책이잖아요? 기적을 통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이 누구냐 라는..
박중현: 근데 5장안에서 보는것도..
정애자: 아까 제가 18절에 왜 19절이 나왔냐면.. 18절때문에 뒷부분에 19절이 나온거에요.
박중현: 그렇죠. 그거에 대해서 심판하고 생명을..
정애자: 근데 그렇게 하지 마시구요. 일단은 19절부터 23절까지만 보구요, 그것 딱 보고 24절 따로 보고, 25절에 진정으로 진정으로 보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게 왔다갔다 하니까 정신이 없네요.. 19절부터 우선 23절까지만 보면 안되요?
나상근: 그렇게 봐도 될것 같은데요?
정애자: 근데 앞부분을 보면 뒷부분이 이해가 되요. 앞부분에서 이해가 되면..
박중현: 저는 심판하고 생명하고 계속 29절에 이어진다는 느낌이 들어서..
정애자: 21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린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나도 살린다 지금~ 병자를 살리고 한다~ 이렇게 보면 더 쉬워요 지금~ 그리고 20절에도 아까 말씀하셨던거 참 좋은것 같아요. 상속자다. 상속자는 그 아버지는 상속자에게 다 알려주시잖아요. 그러니까 아버지도 하신걸 나도 하는데, 더 큰걸 보여준다. 이제 20절을 보면 또한 이보다 더큰 일을 아들에게 보여주셔서 너희들을 놀라게 하실 것이다. 근데 이게 뭘까 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박중현: 그 큰일이 무엇인지? 그것도 좋은 질문 같아요.
송진업: 나도 그 질문 하려고 했는데,
정애자: 우선 이것부터 보고 넘어가면 좋을거 같애요. 너무 왔다갔다 하니까..
송진업: 내가 요걸 놓쳤네~
박중현: 그러니까 23절까지 보자는 말씀인가요?
정애자: 네, 우선 이것부터 해결하고, 또 그 다음에 진정으로 진정으로 를 해결하고, 또 그다음을 해결하고.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 이걸 하나하나 다뤄보자는 거죠.
송진업: 상익형제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이 진정으로 진정으로 다음에 20절에 연결해서 정애자 교우님 질문은, 이보다 더 큰일이 무슨 일이냐 하는것이 질문이시죠? 저도 질문 메모한걸 놓쳤는데..
박중현: 질문한걸 대답해볼까요?
송진업: 혹시 대답 생각해 오신분 있으시면… 상익 형제는 더 큰일 생각 안해봤어요?
임상익: 더 큰일을 통해서 그 부분이요?
송진업: 네 그 부분이요.
정애자: 19절, 20절이 똑같은 말이에요. 나는 권한이 있는데, 이것보다 더 큰 일을 너희가 보면서 너희가 놀랄 것이다. 그게 21절이라는거죠. 그 큰일이
나상근: 더 강하게 이야기한게 아닐까요?(웃음)
정애자: 더 강하게? (웃음)
박중현: 그러면 그 앞에 그보다 더 큰에서 그 가 무엇일까요? 우선 그게 무엇인지..
정애자: 우선 크게 이야기하면 새 창조인데,
송진업: 여기 뭐라고 썼냐면, 구체적으로는 나사로를 살리고 나아가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십자가의 부활, 하나님의 나라 왕으로 다스리신 이렇게 메모했네요.
박중현: 이보다 에서 이가요?
송진업: 아니, 더 큰일이~
박중현: 우선 이부터 살펴보자는 거였어요.
송진업: 앞에걸 봐야죠. 아버지가 행하신 그것을 아들이 그대로 일을 하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셔서 아들에게 아버지의 일을 다 보여주신다는 거에요. 또한 이보다 더 큰일을 아들에게 보여주는데 이게 뭐냐는 거지~
박중현: 그러니까 이가 뭐냐는 말이었어요.
송진업: 그러니까 설명했잖아요.
박중현: 그러니까 이보다 더 큰일에 대해서 설명하신것 같아요.
정애자: 그러니까 그 이 에 대해서 설명한것 같다. 19절, 20절이 그 이 라는 뜻이라는 거죠.
송진업: 더 큰일은 이보다 를 받는 말이잖아요. 그 일을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인데, 그것에 대한 답변을, 작게는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을 내다보는 것이고, 나사로를 살리는 일이 뒷장에 나오지 않나요? 더 나아가서는 인류를 구원하시는 십자가,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 라는걸로 했다는거죠.
정애자: 그러니까 이 는 19절하고 20절을 이야기하는것이고, 더 큰일은 21절에 나오는데, 21절에 부활 이야기하는데, 저는 5장에서 본다면, 이 병자를 고친게 살린거에요. 죽은 자를 살린거에요. 이 사람 몸은 안 죽었잖아요. 몸은 안 죽었는데, 이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구요. 그쵸? 생명이 없는 사람이죠. 근데 이 사람을 안식일에 살린거죠. 이게 참 안식이 무엇인지 알려주는거랑 똑같은 것 같아요. 근데 또 살릴거다. 이런거죠.
송진업: 관주성경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더 큰일에 대한 관주는 요한복음 14장 12절에 붙어있거든요? 그쵸? 상익형제 그렇게 되어있죠?
임상익: 네.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나아감이다 라는게 핵심인거 같아요. 그래서 이것과 연관시켜서 생각을 해보자면..
송진업: 그러면 아버지께 간다 라는게 뭐에요? 구체적으로?
임상익: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이게 이제 그 십자가를 말씀하신게 아닌가 라는 걸 말씀하신것 같아요.
정애자: 아, 그러니까 본인이 부활한 그걸 말하는거 같아요?
임상익: 네. 그리고 그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 인류를 대표해서 돌아가시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측면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정애자: 요것뿐만이 아니고? 더?
임상익: 네, 그리고 저는 어디랑 연관 시켰냐면, 예전에 저희가 배웠을때 1장에 51절을 보면,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하면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것을 보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커넥션을 직접 볼거다. 이런말을 강조하시는것 같아요.
정애자: 응. 그렇구나
박중현: 최종택 교우님은? 너무 말씀을 안하셔서..
송진업: 역시 상익이가..
정애자: 너무 부담시키지 말아요.
조성환: 잘 이야기한것 같은데요.
송진업: 아니, 너무 열심히 공부해. 제일 열심히 공부해 오는것 같아. 적당히 읽어 오지도 않고.
임상익: 제가 요즘 시간이 많아서요.
조성환: 지금, 한창 불이 붙었어. 됐어요. 이정도면 어느정도 다 이야기 한거 같은데, 너무 많이 나갈 필요도 없고..
아까 말씀하신대로, 앞으로 일어날 놀라운 일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고, 예수님 자신도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모든 일들이 정말 놀라울 것이다. 이정도만 하면 됐지 뭐.
송진업: 상익 형제 왜 질문 안올려요? 왜?
임상익: 아, 좀 이따가 파트가 오면 그때 질문하겠습니다.
(일동 웃음)
박중현: 이제 24-29절 한번 이야기해볼까요?
임상익: 저는 29절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라고 되어있는데, 감은 잡겠는데요, 우리가 부활이라고 하면 저는 새창조, 구원 이런 긍정적인 이미지인데, 왜 심판의 부활 이라고 표현을 했을까가 궁금합니다. 정확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송진업: 참고서적 안봤어요?
임상익: 네 못 봤습니다.
정애자: 근데 28절 때문에 그 말씀을 하신것 같아요. 무덤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듣는데, 그니까 무덤속에 있다는건 이미 죽었다는 거잖아요.
임상익: 네 그렇죠.
정애자: 그니까 죽은 사람에는 두부류가 있는거잖아요. 믿었던 자와 안 믿었던 자, 그니까 믿는 사람은 생명을 얻은 거고, 둘다 부활을 해야 하는건데, 믿는 사람은 생명의 부활을 얻는거라고 보면 될거 같아요. 28절 그 부분 때문에 굳이 부활이라는 단어를 쓴것 같아요 29절에서.
임상익: 알겠습니다.
송진업: 그래도 좀 더 자세하게 누가 설명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요.
박중현: 저도 이게, 29절을 보면서 다른 책을 보기전까지는 되게 헷갈리더라구요. 그게 언제 죽고, 언제 심판을 하고 그러는지 헷갈렸는데, 주석을 참고를 하니까 도움이 되는데요, 우선 24,25절은 심판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 이거는 영적인 죽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느라고, 그니까 재림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셨을때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믿음의 심판을 하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하는 내용인 것 같더라구요. 25절에서는 죽은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말씀하셨을 때도 죽은 자들은,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아니고,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때가 온다고 그래서 영적으로 살아난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고, 28절 29절 같은 경우는 예수님이 재림시에 육체적인 부활때 잘 믿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을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이렇게 주석책으로 되어 있더라구요. 물론 23절에도 뒤에도 심판이라는 말이 나오긴 하는데, 이게 재림때인지 초림때인지 잘 구분해서 봐야 야 하는 것 같아요.
나상근: 28절이 이게 시제가 미래로 되어 있기 때문에 미래로 보셔야 되요.
박중현: 네 그니까 28절은 재림인것 같아요.
송진업: 다니엘서 12장 2절이 관주에 붙어있는데 읽어봤어요?
정애자: 상익형제 또 부를려고?(하하). 집중해서 공격하시는거 같애.
임상익: 읽긴 읽었는데, 메모를 안해놔서…
송진업: 12장 2절을 읽었는데 뉘앙스가 살아나는것 같다.
정애자: 그리고 땅속 티끌 가운데서 잠자는 사람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깨어날것이다. 이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은 수치와 함께 영원히 모욕을 받을 것이다. 똑같은 말씀…
박중현: 최종택 교우님도 말씀 한번 하시죠.
최종택: 재림하면,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부활만 생각하는데, 아까 이야기 하셨듯이, 재림때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결국은 하나님을 잘 믿고 뜻대로 잘 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것이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것이고..
정애자: 그리고 저는 참 재미있었던게 이게 너희에게 말하잖아요. 여기 있는 사람 모두에게 말을 하는 거잖아요. 그니까 유대인들에게 말하는 건데, 25절이 지난번에 이야기한 그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도 너희들이 지금 이때다. 지금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때다 등의 때에 대해서가 계속 나오거든요. 그니까 여기서도 지금이 때다. 내가 왔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때가 지금이다. 그러니까 때가 아주 강조가 되어서, 그니까 너희가 지금 내가 왔는데, 내가 지금 안식일에 고치고, 안식일의 의미가 이거고, 나는 이런 권위를 갖고 있다는걸, 아주 강조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진정으로 라는 말을 안 쓸 수가 없었던 거에요.
박중현: 저도 정애자 교우님 말하고 아주 많이 공감이 가는게,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쳤는데, 사람들이 이걸 보고 듣고 한게 아니라, 안식일을 왜 범했느냐,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나도 일한다 를 통해서 왜 하나님과 동등하게 자기를 놓느냐 라며 거부감을 나타내잖아요. 그래서 19절에 너희들이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것이고 생명을 얻지 못할것이다 라고 자연적으로 이어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니까 이땐데, 내 말을 들을땐데,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니까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임상익: 그니까 19절에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를 먼저 설명하신것 같아요. 그 다음에 병렬적으로 나는 하나님을 통해서 하는거고, 심판의 권한도 하나님께 받아서 하는거고, 이런 말씀을 계속 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 19절에서 대중들에게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 그리고 어떻게 내가 사역을 하는지를 설명을 하고 그 다음에 쭉 이야기 하시는것 같아요. 그렇게 이해하시면..
나상근: 그게 인제 27절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할 권한을 주셨다 그것은 아들이 인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니엘서에서 나오는 인자가 나다. 그게 메시야다.
박중현: 그럼 29절까지 장로님께서 정리를?
조성환: 네? 29절까지? 몇절부터?
박중현: 19절부터(일동 웃음)
송진업: 아이, 다음 문단까지 듣고 해요.
조성환: 그래, 마지막에 할게.
박중현: 그럼 30절에
(웃으면서 이러다가 참석 안하겠다 라는 외부의 목소리)
조성환: 아이, 갑자기 물어봐가지고(웃음)
(30-47)
박중현: 그럼 30절에서 47절까지 궁금한거 있으면 질문해보시죠.
송진업: 상익형제 늦게 왔으니까 질문 해보시죠.
임상익: 어… 사실 이 부분에서는 질문이 없습니다.
송진업: 그럼 다른분이 하시면..
정애자: 근데 30절을 굳이 따로 뒷쪽에 하는것보다 19절부터 말씀하신 그게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 뭐 이런 말들을 정리해주는 내용 아닌가요?
임상익: 30절이요?
정애자: 네, 30절이 앞부분을 간단하게, 내 말을 하나도 듣지 않는다.
최종택: 31절 아닌가요?
정애자: 아니요 30절이요. 30절부터 뒷부분으로 붙였거든요.
송진업: 우리 셋이 문단 나누기가 다 달라요.(웃음)
박중현: 다 다르기 때문에 제가 정한 문단으로 진행하죠. 30절은…
정애자: 이게 정리해서 그러므로~ 이렇게 하는 느낌이 들어서, 아, 근데 따옴표가 따로 있긴 하네요.
박중현: 네, 30절이 됐던지 31절이 됐던지간에 47절까지는 증거, 증언에 대한 이야기 같거든요.
나상근: 요한의 증언이 앞에서는 요한복음 처음 시작할때는 중요한것처럼 다루었는데, 여기서는 중요한게 아니고 더 큰 증언이 있다라고 왜 그렇게 했는지..
정애자: 뒷부분 말씀하시는거죠?
나상근: 네, 질문하라고 해가지고
(일동 웃음)
조성환: 증언 했다는거죠. 사실 근데 메시야가 더 큰거 아니야. 근데 유대인들이 깨닫지 못하는거지. 어떤 자기의 개인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는 아주 바로 깨닫지 못하고 눈이 가리워갖고..
나상근: 두번째는 37절 보면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증언해 주었다.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은적도 없고 그의 모습을 본적도 없다 저기 출애굽을 보면 하나님을 봤다고…
조성환: 그니까 이 사람들은 영적으로 눈이 멀어있는거야. 유대인들은,
나상근: 그리고 예수님 세례받을때,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잖아요. 그쵸? 음성을 들었는데, 음성을 들은적도 없고 본적도 없다 라고 하잖아요.
임상익: 그게 메인 포인트가 38절인거 같아요.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조성환: 말씀보다는 그 외형적인거, 안식일도 이 사람들은 본질을 모르고, 안식일을 아무것도 안하는것만 머리에 꽉 차 있으니까 예수님이 책망한거지.
나상근: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정애자: 그 세부적인 상황만.. 엄청 관심이 있어요.
조성환: 그니까, 우리도 잘못하면 그렇게 되기가 쉬워. 너무 이, 율법만 따지면, 큰 걸 봐야 하는데….
박중현: 여기 요한복음 1:34절 같은 경우는, 이런말이 나오거든요, 이게 29절하고 이어지는건데,
송진업: 이게 세례 요한의 증거죠?
박중현: 네, 그렇죠. 요한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한다고 나와있잖아요.
송진업: 근데 2장 25절에 보면,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 라고, 사람에 대한 증거가 필요없다고 이야기 하시거든요, 그니까 요한의 증거와 5장에서의 증거를 보면, 하나님이 해 주신 증거라고 읽혀지는데?
나상근: 여기서 유대인들은 증언하는게 필요하잖아요. 요한의 증거도 있고 한데, 나는 요한의 증거를 신뢰를 하지 않고 하는 의미지, 요한의 증거가 배재되는것은 아닌거죠.
박중현: 일단은 네가지로 나뉘어 놓은거 같아요. 네 가지 예수님애 대한 증언.
나상근: 어떤 증언이죠? 말씀 증언…
정애자: 그니까 대답이요. 예수님의 증언이 있는데, 이걸 누가 증언했냐, 요한이 증언했다. 그게 나는, 하나님이 증언했다 나를…
박중현: 그게 두번째고, 세례 요한, 하나님..
나상근: 그 다음 말씀이죠.
박중현: 그렇죠. 성경이죠. 하나 더 있는거 같거든요? 나머지 한가지가 우리가 전체적으로 성경을 보면서 유의하면서 봐야 하는거 같더라구요. 그 한가지가 무언지….
정애자: 영광을 생각하는거요?
박중현: 그게 아니구요.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 30절에서 47절까지 네가지가 나오는데, 세가지가 아까 이야기했던 세례 요한, 그 다음 하나님, 그리고 말씀.. 우리가 누가복음할때도 모세와 모든 선지자가 성경이 나에 대해 기록했다 라고 할때도..
정애자: 네, 모세 5경…
박은주: 요한일서 5장 11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정애자: 그니까 이건 하나님이 증거하셨다는 거구요..
송진업: 근데 그거 말씀은, 예수님 자체를 말씀하시는거 같아요. 요한일서 말씀은..
정애자: 아, 내가 나를 증거한다?
송진업: 내가 나를 증거하는거죠.
박중현: 36절을 보시죠.
송진업: 이건 아버지의 증거죠.
박중현: 아니요. 후반절을 한번 봐 보시죠. 읽어보시면,
나상근: 아, 예수님께서 하셨던 기적?
박중현: 네 그렇죠. 예수님께서 하신 일. 예수님께서 표적을 통해서 하신 그 일이 나를 증거해주는 그런 말이거든요.
나상근: 보통은 자기를 증언하는건 의미가 없는데, 말 뜻 자체가 요한의 증언, 하나님의 증언, 말씀의 증언이게 되지만도, 이게 요한의 증언보다 나 스스로 보여주는 증언이 더 신빙성 있다 라는 말 같아요.
박중현: 네, 그러니까..
조성환: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영적으로 눈이 떠 있으면 이거 보면, 아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라는 걸 아는데, 지금 이 분이 누구인지 모르는거지, 안식일을 또 병자 치유하니까 트집잡으려고 하니까, 예수님이 생명을 살리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제일 중요한 일인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거지. 그러니까 지금 생명 살리는 일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거지만 내가 하는게 아니라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대권을 위임받아서 지금 예수님이 하는거잖아요 그죠? 그러면서 그 증거를 댈려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이 사람들은 계속 깨닫지 못하니까 반은 책망하고 반은 진리를 말씀하시는거 같아요.
박중현: 그래서 저는 여기 예수께서 가나 사건을 통해서든지, 나사로를 살리는 일이라던지 그런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통해서 메시야라는것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받아들여야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조성환: 이게 세번째 표적이거든? 병자 고치는 일이, 혼인 잔치 가나가 첫번째고 그 전에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것, 그리고 또 이 중풍병자.. 이런것들이 전부 영적인 의미가 있는것 아니에요. 영적으로 병든자, 죽은 자들을 살리는데, 어쨋든 그것이 하나님의 주 사역이죠. 생명을 살리는 일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거죠.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 역으로 말하면 심판하고 또 관련되는 말이기도 하고..
임상익: 순전히 예수님을 받아들이는게, 나의 주체적인 책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40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되어 있잖아요. 자기들이 오고 싶어하지 않는거죠.
조성환: 그럼, 아무리 설교를 줘도 이렇게 완악한 마음을 갖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적용이 안되는거죠.
임상익: 이 사례를 보니까 예수님께서 증언을 말씀하시면서 니가 나를 안 믿는거 아니냐. 이런말씀을 하시려는 것 같아요.
정애자: 그죠. 그 33절도 요한은 나를 증언했다. 하지만 너희들은 나를 안 믿었다 이거죠. 너희들은 그냥 즐거워하기만 했고, 어 그럼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걸 너희들이 안했다라는걸 하기 위해서 앞에 부분은 35절까지.. 근데 더 큰 증언은 내가 한 일들이다. 아까 말씀하신 그 일들.. 아, 이건 정말 하나님, 메시야만 하는 일인데 라고 되야 하는데 너희는 그걸 안 믿었다. 그리고 성경도 있는데, 너희들이 성경은 연구만 하는데, 그것도 바로 나에 대해서 증언을 하는데 안 믿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더큰 증언, 그리고 요한보다 더 큰 증언, 이렇게 말씀 말하고,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봐보면, 이게 다 있어요.
조성환: 그리고 44절에는 이제, 서로 자기들의 영광만 추구하는거야. 이 사람들은, 유대인들은 자기들 막 성경 많이 알고 율법 잘 지키고 이러는게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건데, 진짜 영광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인데 이걸 구하지 않고 자기 영광만 구한다는거죠.
박중현: 계속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파들을 나무랐던거 같아요. 너희들이 계속 너희들의 영광만을 추구했지, 진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 본문 뿐만 아니라 다른 본문에서도 계속 나오는것 같아요.
최종택: 그러면 32절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은 따로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나를 증언하시는 분이 구체적으로 뭐를 의미할까요?
송진업: 성부 하나님, 성령님?
조성환: 성령, 하나님 이겠죠?
최종택: 여기서는 성부 하나님을 의미하는걸로 봐야겠죠?
정애자: 네.
최종택: 그러면서 34절에 내가 이 말을 하는것은 내가 사람의 증언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만 너희들로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라고 했거든요. 그니까 그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 결국 하나님을 증거하는것을 바르게 받아들일때 구원이라고 하는것 같은거죠?
정애자: 그렇죠. 근데 여기 34절에 사람이라고 하는것은 요한을 가르키는 말 같아요. 여기 34절에 여기 사람은 요한인거 같아요. 33절을 말하는거 같아요.
임상익: 그렇게 연관을 지을 수 있을것 같아요.
정애자: 네, 33, 34가 연결이 되는.. 바로 요한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임상익: 그리고 여기서 제일 큰 주제가, 예수님을 증언하시는 분이 성부 하나님이신데, 여기 유대인들이 그거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일려고 하지도 않고 또 성경을 잘못 공부하고 있다고도 나와 있더라구요. 여기 43절에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에서 관주 찾아보니까 다른 사람이 거짓 메시야 라고 나오더라구요. 그니까 이 사람들이 잘못 공부하고 있다는걸 말씀하시는거고 책망이신것 같아요.
정애자: 그니까 비꼬는 것도 있어요 지금.
임상익: 네
정애자: 너희는 지금은 내가 하나님이 보냈다고 하는데도 안믿지? 근데 다른 사람들이 말하면 너희들이 쫓아가잖아.
그니까 전혀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거지…
조성환: 그래, 이제 다 이제 전체적인 흐름과 방향은 잘 잡혔죠 그지? 그래서 안식일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또 자신이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것과 관련이 있는거잖아요. 사람을 살릴려고 생명을 주는 사역인데, 그 사역의 기원은 결국 하나님 그죠?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 되시고 이런걸 예수님에게 그걸 사실 위임한거나 마찬가지죠 그죠? 생명 구원 사역을.. 그것을 어떻게 보면 증언하고, 아버지와의 관계,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과 참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것을 언급하시면서 증언하는 것들이, 뭐…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생명의 주인이라는게 계속 강조되는데, 1장부터 쭉 하면서 5장은 안식일 나오죠? 6장은 또 유월절을 가지고 절기를 가지고 절기를 새롭게, 유대인들이 절기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고 오해하고 있는것에 대해서 일깨워주면서 영적인 진정한 의미를 계속 들춰내는것이 요한복음에 계속되는거니까 그건 전체적인 흐름을 감안하시면서… 또 요한복음이 좋은게 이렇게 장마다 딱딱 주제별로 한가지씩 나오니까 공부하기에 좋은것 같아요.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정애자: 그러는것 같다.
(끝)
(다음 공부는 2주후에 하기로 하였습니다. 진도는 일단 6장 전체 다 공부해 오는걸로 했습니다)
조성환, 정애자: 다음주는 못하겠네요.
박중현: 2주 후에나 하겠네요. 저번주에도 5명 정도 했는데 참 좋았습니다. 나상근 교우님 처음 나오셔서 너무 좋습니다. 이 자리는 누구를 가르키는 자리가 아니고 자유롭게 궁금한걸 나누는 자리니, 부담없이 참여하시면 될것 같다.
박중현: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5장이다.
나상근: 피비에스 식으로 합니까?
송진업: 피비에스로 해오면 됩니다.
박중현: 피비에스를 일주일간 개인적으로 해 오시면 되고, 혹시 카톡방 들어와보셨나요? 카톡에 들어와서 토론하시면 됩니다.
송진업: 카톡방 예전꺼는 못 보시니까.. 카톡방에 질문을 올릴려고 했는데 못했다.
박중현: 저도 카톡방에 질문 몇가지를 올렸는데, 그것을 보고 자유롭게 토론하자.
송진업: 답변을 카톡방에 올릴려고 했는데 못올렸다. 상익형제가 답변을 올린것 같다.
박중현: 네 저도 상익형제가 답변 단것 봤습니다. 제가 올려놓은 질문에 상익형제가 답변을 해줬는데..
송진업: 근데 8절에 질문이, 예수님이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그러자 9절에 병자가 나아서 자리를 들고 일어났다는 대목에서, 13절에 그 병자가 자신을 치유해준 자가 누구인줄 모르는데 어떻게 8,9절에 나온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일어났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잖아요.
박중현: 아, 송진업 교우님, 일단 문단을 나눕시다.
송진업: 네. 그럽시다
박중현: 일단은 5장 4절까지 했었는데요, 1장부터 4장까지의 흐름을 보니까 5장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네요. 요한복음 1장 같은 경우에는, 말씀이신 예수님, 창조자가 되신 예수님, 빛이 되신 예수님 등의 내용들이 있어서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서에 대한 주된 내용이었던것 같구요, 또 뒷장에 2장같은 경우는, 가나 지역에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때 민장로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든 그 의미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 자체가 새 창조의 역할이라는 설명이 새롭게 들렸습니다. 그 설명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새 창조에 대해 암시하신것을 좀 느낄 수 있었고, 또한 새 창조를 하러 오신 예수님이 이후에 어떤 역할들을 하는지 보니까 성전청결 사건이 있었고, 3장에 니고데모를 통해 예수님께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건지에 대한 말씀이 있어서, 우리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시고 우리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작업을 하시는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4장 같은 경우는 사마리아인과의 대화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신것 같더라구요, 새 창조의 역사속에서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이후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예수님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그 동네 주민들이 다 믿는것을 보듯이)이시고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분이시구나 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것 같아요. 그래서 5장을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이 어떤 역할을 하러 오셨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고, 이런걸 증거할 수 있는 분들이 어떤 분들이 있었는지 볼 수 있는 부분들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1장부터 쭉 보면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5장을 보면 6장에 비해서 길지 않는 47절로 되어있는데, 일단 문단을 나눠보신분 계시면 한번 나눠주시죠
정애자: 저는 5장은 1-4절까지 나눴는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어떤 못이 있었다. 이 부분은 환경을 나타낸것 같구요. 5절부터 사람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는 의미로 9절까지 나눴구요. 그런데 그날이 공교롭게도 안식일이어서 안식일날 치유한것에 대한 유대 사람들의 반응으로 뒤로 빼서 10-13절까지 나눴습니다. 이 부분에서 그 사람을 낫게 해 주셨으나 정작 그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14절에 비로소 예수님이 누군지 알게 되었습니다. 14절부터 18절까지는 예수님이 그 사람을 만나서 나는 누구고, 나는 일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안식일에 일을 하기 때문에 자기의 뜻을 잘못 알고 있고 나와 하나님의 위치는 동등된 위치에 있고 그런 말을 들으며 주위 사람들이 엄청 화가 났다 라는 내용이 있었구요. 동등된 위치가 권위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 권위가 19절부터 시작되는 두번째 문단에 이어지는 것 같다. 예수님이 아주 자세히 내가 이런 권위를 가진 것은 하나님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부분을 26절까지 잡았어요. 근데 26절 앞 부분에는 내가 하나님과 동등되다라는 것과 뒷쪽은 27-30절까지 심판의 내용같은데, 믿는자와 믿지 않은 자가 모두 심판을 받는데, 믿는 사람은 생명의 심판을 받고, 악한 사람은 악함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 라는 내용으로 그렇게 나눠봤구요, 그리고 30절 이후에 오는 세번째 단락으로 예수에 대한 증언은 중간에 자를 수 없더라구요. 예수님의 증언에 대해 너희들이 믿지 않는다 (죽이려는 자들에게 하는 말씀). 너희들은 모세5경도 믿지 않고 나도 믿지 않는다 라는 내용으로 뒤에 그렇게 크게 묶었습니다.
송진업: 저는 큰 틀에서 보면 같은 이야기인데, 저는 한가지로 본다면, 예수님이 나는 사람들을 고치고 생명을 주러 왔다라는 내용을 5장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굳이 나누자면 크게 두문단, 1-18절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는 이야기, 그리고 19-47절까지는 예수님이 하시는 이야기, 그러니까 설교죠. 근데 첫번째 나눈 것에 대한 세부문단은, 1-9절 상반절까지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이야기를 하고, 9절 하반절부터 18절까지는 안식일 논쟁을 하는 내용인것 같다. 그리고 19-47절은 세개로 쪼개봤다. 19-32절까지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시는 일, 즉 생명과 심판에 대한 내용 같고, 33-38절까지는 세례요한보다 더 큰 증거가 있다며 예수님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증거하는 내용 같고, 39-47절은 그런데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다. 이런 내용으로 나눠봤습니다.
박중현: 혹시 더 말씀나누실 분은 없나요
나상근: 저도 중간에 한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저는 1절부터 좀 의미있는 이야기들, 예를 들어 공관복음에는 나오지 않는 예루살렘에서 병 고친 이야기라든지, 양의 문 내용이나 베드자다 못의 다섯 개의 행각 내용 등은 저자인 요한이 어떤 의도를 갖고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베드자다'는 자비라는 뜻인데,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할 때 그 크다는 것을 예수님의 자비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랑이 다섯 칸이라는 것도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에 보면 요셉이 친동생인 베냐민에게 다섯 배 더 주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요? 양의 문이 도살할때 양이 한바퀴 돌고 다시 양의 문 입구로 돌아오는거더라구요. 그러니까 양의 문이 예수님을 상징하는 말이라는 학설도 있고, 일어나라는 말 자체가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인데 바로 부활을 뜻하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5장의 문단은 병이 진행된 문제점과 안식일에 대한 유대인들의 의식을 문제삼는 것, 예수님을 죽이려는 모의 이렇게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누었습니다.
박중현: 우선 그럼 제가 문단을 나눠보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하죠. 저는 1-18절까지는 안식일에 병 고치는 내용들이 주로 많이 들어있는 것 같구요, 19-29절까지는 하나님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도 주시고 심판을 예수님을 통해서 행한다는 내용이 있구요. 즉 죽은 자를 심판하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 그렇게 봤구요. 30-47절까지는 그런 예수님에 대한 증거들, 어떤 증거들이 있는지. 그런 내용들이 적혀 있는것 같아서... 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우선 1-18절까지 쭉 보시고 궁금한점 있으면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카톡에서 4가지 정도로 질문했는데, 이 중에 3개 정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것 같아서, 그중에 중요한것 하나를 좀 언급하고자 하는데, 예수님이 후에 유대인들의 핍박을 무릎씀에도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는 이유가 뭔지를 알고 싶습니다.
(1-18절)
나상근: 우리가 쉽게 생각해보면 될것 같다. 왜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었나요.
박중현: 병 고친걸로만 생각하면 굳이 주일날 안 고쳐도 되거든요. 그데 왜 굳이 안식일에 고쳤는지.
나상근: 우선 상황을 보면 안식일날 예수님이 들어가니까 병자들이 어떻게 합니까? 그 병자는 안식일날 무조건 안식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병자는 안식일날 안식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안식일날 왜 고치셨냐면 안식일날 진짜 안식을 해야 하는거죠. 병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거죠. 즉, 예수님께서 오셔서 안식일날 병자가 있으니까 병자를 통해서 안식일날 안식의 의미를 직접 보여주신거죠.
조성환: 그러니까 예수님이 안식일의 참 안식이다. 예수님 자체가. 안식일을 예수님 자신과 연관시키면서 치유하면서 회복시켜주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상근: 우리가 안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거든요. 창세기에서 보면 6일을 창조하시고 7일에 안식하면서 완전한 창조, 더 이상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생각해보면 1,2,3,4,5,6, 777이 계속 가는거지 8이 되고 이런건 아니다. 그렇기에 7로서 다 끝나야 하는것이다. 그러면 안식하는거는 예를 들어 우리가 창세기에서도 나오고 안식일 사례에서도 나오듯이, 유대인들 쪽에서 생각하는게 무엇인가 하면 우선 안식일이 첫 창조를 기념하는 날이고 그리고 마지막 종말에 완전한 창조로서 바라고 소망하는 것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하면 아무 걱정이 없어야 하고 아무 병도 없어야 하고 오래 살아야 하잖아요. 즉, 뭐냐면 하나님 속에 들어가야 하는거죠.
송진업: 그런데 박중현 교우님 질문은, 예수님이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을 위험을 무릎쓰고 치유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내용이 아닌가.
나상근: 그러니까 안식의 의미가 무엇이냐. 참 안식이 무엇이냐 라는걸 알려주시려고 하시는거죠.
송진업: 그러니까 예수님은 나중에 박해를 받을 걸 예상하던 말던 그건 상관없다는거네요.
나상근: 그렇죠. 너희들에게 참 안식일이 무엇이냐. 나를 통하지 않으면 참 안식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병자를 고쳐줬잖아요.
송진업: 그러면 박중현 교우님은 본인 질문에 대해서 해소 되었나요?
정애자: 이런거 다 알면서도 물어본건가요?(웃음)
박중현: 반반이다.(웃음)
조성환: 교육적인 차원에서 물어본것 같다.(웃음)
박중현: 토론의 활성화를 위해서 물어봤다. 최종택 교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최종택: 말씀하신대로..
박중현: 토요일날 지도자 양성 모임하잖아요. 창세기 하잖아요. 창세기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물어본것도 있다.
송진업: 거기 자리도 비좁다고 그러더라구.
정애자: 그래서 안 오시는거에요?(하하하)
송진업: 왜 안오냐고 물어보시더라구. 아니, 할말이 있어야지~ 멀기도 하고(하하)
조성환: 안 가셔도 되요.(웃음)
송진업: 그런데 우리 5장의 주제가 보면 안식일에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잖아요. 1장 후반부부터. 근데 보면 2장에 와서 가나부터 계속 패턴이 있는것 같아요. 그래서 요한복음 21장까지 요한이 끌고 가는 패턴이 있는데, 가나 혼인잔치 다음에 3장 22절에 유대땅으로 가잖아요. 거기서 세례에 대한것을 이야기하고 4장에 이어서 성령과 진리로 해야한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러면서 5장에 와서 안식일 병자 고치면서 논쟁이 붙은건데, 사실 나 선생님이 말씀하신게 다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6장도 보면 그렇구요. 7장도 그렇고 다 패턴이 어떤 패턴이냐면. 1장 29절에 이틀날 하면서 나오거든요. 그리고 35절에 이틀날, 43절에 이틀날. 그리고 2장에 사흘째 되던날 이렇게 나오는데, 1, 2장 12장 28절까지 이 패턴이 7번 나온다. 그리고 20장 26절에 보면 8일 후에 라면서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요한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넣어놓은거에요. 7일이라는 숫자에 맞춰서 8일 이후에라고 쓴 것이고 그리고 21장 1절을 보시면 이 일들 후에 라고 나온다. 이 일들이니까 7가지 패턴의 일들 후에 를 합해서 이야기하는건지. 그 7이라는 숫자를 맞춰놓고 8일을 7의 숫자에 맞춰서 이야기하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패턴이 그렇게 나오는것 같다. 그래서 그 틀 안에서 보면 다 맞는 이야기다. 세부적으로 보면 그런 내용들인데, 5장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병 고치면서 안식일 이야기가 나오고, 예수님이 설교하는것들이 주된 내용인것 같은데, 5장에서 질문을 추가로 드리자면, 14절에 보면 예수님이 고쳐주시면서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일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라 이런 말을 보면서, 이 병자가 죄를 범해서 38년 동안 이렇게 앉아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중현: 그렇게 봐야하지 않을까요? 죄를 범했기 때문에..
송진업: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겠죠.
박중현: 그런데 이 안식일은 보니까 죄하고 연관이 되어있는 것 같다.
나상근: 시편 103편 3절을 보시면 주님은 너희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분 모든 병을 고쳐주시는 분, 그러니까 죄하고 병하고는 좀 동률적으로 보는 것 같다. 물론 요한복음 9장에서 보면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고 하잖아요 그죠? 소경에 대해서.. 하지만, 하나님 나라가 왔을때 제자들을 보내서 제자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시냐면 제일 처음에 병 고치고 귀신 쫓으라고 하시거든요. 가서 제자들이 너 죄를 사했다 라고 이야기하는것보다 병을 고쳐주는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더 실감나게 볼 수 있는 방법이잖아요. 일단 병과 죄는 동일선상에서 보고 진행하는것이 좋은것 같다.
송진업: 그러면 19절에 보면, 진실로 진실로 이렇게 두번 반복하잖아요. 그런데 원어로 보니까 아멘 아멘 이거든요?
나상근: 이게 앞에 붙는 이유가 뭐냐하면,
박중현: 우선 18절까지만 이야기하자.
송진업: 아, 18절까지요? 18절까지의 제 질문은 그거에요.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셨는데, 예수님의 말로 봐서 이 병이 죄와 관련이 있는지가 암시되어있는것 아니냐 이거였다.
박중현: 저도 궁금했다.
나상근: 결국 안식하고 나중에 다 묶으놓으면, 하나님 나라가 왔다 하는것 자체, 구분되었다는 자체, 1차적으로는 병이 낫고 하지만 예수님이 결국 원하시는건 영적으로의 온전함, 그게 2차적인 뜻이거든요. 1차적으로 병이 낫는걸 보여줘야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는것을 볼 수 있으니까.. 즉,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1차적인것은 병이죠.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병을 고치고 귀신도 쫓으라고 하신게 하나님 나라가 도래함으로서 병이 낫고 하는 그 자체를 봐야 한다는 뜻이고, 또 우리가 안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완전한 새창조가 되서 우리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을때가 참 안식이잖아요. 그때까지는 우리가 병 고쳐나가는 건 당연한거고, 그래서 예수님이 38년된 병자를 고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시 병 안 걸린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송진업: 그래서 죄를 범했다는것이 17절에 일한다고 나와있는데, 이것이 무슨 일이에요? 저도 어느정도 짐작하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박중현: 제가 토요일날 들은 내용인데, 창세기에서 들었을것 같은데, 그 내용과 관련이 되어있는 것 같다.
최종택: 그 내용은 그 내용이고 여기 5장에서 보면, 5장 1-18절까지 보면 주제는 안식일인거 같은데, 안식일을 예수님이 왜 이야기를 하셨을까? 이건 당시 이때에 유대인들이 참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안식일에 대한 개념을 잘못 알고서 율법적으로만 살고 있으니까, 그게 안타까운 상황에서 예수님이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시면서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심으로서 이땅에 참 안식을 주겠다 라는 것을 말씀하시는건데, 이 안식일을 예수님이 말씀하심으로 인해서 유대인들이 오히려 더 핍박하는 도구로 삼는데, 이것을 보면서..
송진업: 제 질문은, 아버지께서 일하시는데 나도 일을 한다. 이게 과연 어떤 일이냐 이거죠.
나상근: 유대신앙에서 어떻게 보냐면, 하나님이 안식일에도 일을 하시는지 안하시는지 연구했는데, 안식일에도 사람이 태어나고, 죽잖아요. 그래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일을 하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결국 어떻게 생각해야 하냐면,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셨는데 쉬셨잖아요, 사단이 들어와서 아담이 타락을 해서, 만약 아담이 타락을 안했다면, 영원하게 같이 살고 낙원에서 살 수 있는건데, 죄를 지었기 때문에 타락하고 고난이 오고 문제가 되기 때문에 7일이 무슨 이야기냐면 6일까지 창조하고 7일은 완전한 창조보다는 새 창조. 영원한 안식으로 하는, 그걸로 봐야 할 것 같아요.
송진업: 그러면 18절까지 안식일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했는데, 내 질문의 핵심이 뭐냐면 그 일이 뭐냐가 질문의 핵심인데, 사실 답이 있는데 그냥 물어보는거에 대한건 의도가 있는거거든요.
박중현: 그러면 송진업 교우님이 어떤 일을 하는지 말씀해 보시죠.
송진업: 나선생님 최선생님 이야기 하신것도 다 들어가 있는 내용인데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38년된 병자가 못에 들어가야 하는데 넣어줄 사람이 없다고 해서 믿음이 없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믿음이 없는게 아니라 몰랐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 사람이 예수님인지 누군지 몰랐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병자가 뭐라고 이야기했냐면 저 천사가 내려오면 그때 물에 들어가야 하는데 넣어줄 사람이 없다 라고 이야기 했고 예수님이 그때 더 큰, 그 사람을 직접 치유하는 더 큰 일을 했잖아요. 그 사람을 물에 넣어주거나 한게 아니잖아요. 이건 제가 봤을때는 정말 엄청난 사건이거든요. 그런 후에 예수님이 죄 짓지 말아라 더 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라고 말씀하셨고 나중에 다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서 이 사람이 예수다 라고 말하고 다니면서 문제가 발생한거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일이 지금 38년된 병자를 치유한게 되는거죠. 그죠? 크게는 심판, 생명 이런게 다 일인데, 제가 여기서 읽혀지는건 이렇게 읽혀집니다.
최종택: 일이라는게 결국 구원사역이죠.
송진업: 그렇죠.
최종택: 그 과정을 결국 예수님이 하신다는 거고, 그러면서 정말 유대 사람들이 새 창조로 가는게 아니고 율법에 얽매여 그 틀에 얽매여 있는 상황을 예수님이 깨는거죠. 그러면서 율법을 털고 일어서서 새 창조의 길로 가라라고 하시는데..
송진업: 그런데 안 믿어요 사람들이.
박중현: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17절에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을 하시는 그 일 자체가 새창조라고 이야기하시는데 이 문맥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것인지, 물론 병자를 낫는것 자체가 아닌것 같고
최종택: 그러니까 병자한테 앞으로 죄를 또 지으면 또 병에 걸릴것이다 라고 말씀하신것처럼. 새 창조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게 아니고 구원에 이르는 과정이잖아요. 그리고 그 과정 마지막날에 구원으로 갈것인가 심판으로 갈것인가 그건 주님이 결정하실 상황이고, 이때 이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다시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은 이 구원 사역에 동참해서 의롭게 살라는 말씀이겠죠.
송진업: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부모님을 불러서 유대인들이 물어봐요. 성경에 있는 내용이니까, 유대인들이 물어봐요 진짜 너 아들이 맞냐. 그런데 뭐라고 하냐면 오히려 그 유대인들은 교육한다고 너는 그의 제자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고 하죠. 즉, 이렇게 병자들도 예수님께서 자리를 들고 일어나게끔 겉으로 이렇게 치유를 해주시지만 결국 속까지 예수님 믿는데까지 나아가는것은 ..
나상근: 그런데 이걸 생각하셔야 하는게, 메시야가 오실때 유대인들이 생각하는것은 눈이 뜨이고 이런걸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병이 고쳐지는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해왔던 일이고 새창조, 참 안식까지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죠.
정애자: 아까 말씀하신것 중에서 이 사람의 죄 때문에 이 사람이 병에 걸린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보지 말고 이 사람이 어떻게 보면 대표에요. 대표라고 생각해야지 이 사람이 죄를 지어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면 안될것 같아요. 죄와 안식과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어요.
박중현: 그런데 이 사람에 한해서는 14절에 보면 그 이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만나 더 심한게 생기기 전까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시는걸로 봐서는, 우리가 똑부러지게 무슨 원인으로 죄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4절에 의하면 이것은 죄와 관련해서 봐야할것 같아요.
나상근: 이건 이렇게 생각 하셔야 해요. 우리가 아담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을때는 병도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과 떨어진 이후로는 병도 오고 궁핍도 오고 문제가 생긴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안식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이 하나님께 의지만 하면 안식이거든요. 모든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되는거거든요.
박중현: 근데 이 상황에서는, 안식이라는 말은 죄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끊어져 있었다가 그것이 회복이 되면서 그 안에서 우리가 자유를 누리는것이 안식이라고 볼때 이 문맥을 보면 14절을 통해서 38년동안 가졌던 질병이 죄를 인해서 얻었다고 보았고, 그래서 그 죄 자체에 대해서도 예수님이 해결해 주셨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름대로 38년동안 자기 스스로 왜 이 병에 대해 걸렸는지 생각도 해보았을 것도 같고 그래서 자신의 죄에 대해 온전히 해결하고 예수님께서도 이 사람의 죄에 대해서도 말씀하신것 같고.. 그러니까 죄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정애자: 죄와 관련이 있다는건 되는데, 너가 38년동안 있는건 죄 때문이다 라는건 그 사람을 정죄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보지 말자는 거죠.
송진업: 우리말 성경 역본에는 정애자 선생님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보아라 너가 다 낫었구나. 더 심한 병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라고 하거든요, 그러는거 보니까 ..
박중현: 그러니까..
나상근: 그렇게 보시라는 내용이 아니고 죄와 병이 관계가 있다고 보시구요, 9장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죄와 병이 꼭 연관있다고 보지 말라라고 하셨잖아요.
박중현: 그런데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른거죠. 이 본문상에서 보자는 거죠.
나상근: 기본적인건 병이 죄와 관련이 되어 있죠.
박중현: 아 그러니까 본문 안에서 보자는거죠.
송진업: 이렇게 한번 봐보세요. 보라 너가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서 악한일이 네게 일어나지 않게 하라. 어떤 뉘앙스입니까?
박중현: 그러니까 죄를 범했고, 이제 죄 사함을 받아서 앞으로 다시 죄를 짓지 말라는 논조로 들려요. 그러니까 어쨋든 여기서 병자가 걸렸던 병과 그 사람이 지었던 죄하고는 관련이 있다고 보거든요.
나상근: 기본적인건 우리가 죄하고 연관되어야 하지만, 메시야가 오면 병자도 눈 딱 뜨고 그러기 때문에 그 자체가 꼭 죄와 관련되지 않는다는걸 인식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9장에서도 너무 꼭 죄와 연관시켜서 이야기하지 말라고도 하셨구요.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죄와 병은 연관이 되어 있는거고, 그거는 우리가 인간으로 하나님과 멀어진 상황에서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인거고,
정애자: 그러니까 그 죄를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나상근: 결국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죄라는건 그냥 포괄적인 영적인 죄를 말씀하시는거다. 그래서 너는 앞으로 거듭나서 그렇게 살아라 라는 의미이다.
정애자: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떨어뜨리지 말아라 라는 의미이지 그 사람의 죄와 연관시켜서 이야기하시는건 아닌것 같다.
송진업: 박중현 교우님 아까 질문 그냥 넘어간것 같아서, 그거 해소되었어요? 그 질문에 대한..
박중현: 어떤 질문이요?
송진업: 4번 질문이요.
박중현: 아, 4번은 아까 해결되었습니다. 그게 제일 큰 주제인것 같아서 제가 꺼내봤습니다.
송진업: 질문 적어왔어요? 질문 적어오라고 했는데
박중현: 그러면 송진업 교우께서는?
송진업: 저도 질문 많이 했잖아요. 19절부터는 굉장히 많아요.
정애자: 18절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아요? 18절이 19절로 넘어가기 위한…
나상근: 나는 그 부분에서 질문이 전혀 안 생기는데?
박중현: 저 한가지 또 질문이 있다면,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7일날 안식일에 쉬셨고 또 너네들도 쉬어야 한다고, 그런 말씀이 있는데, 17절에 보면 이제까지 일하신다는 말이 있어서..
정애자: 그러니까 아까 말씀하신대로 새 창조를 계속 한다는거다.
나상근: 신명기에서 출애굽쪽으로 해석하거든요? 제 7일 안식일 자체가..
박중현: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7일날 쉬셨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상근: 제일 처음 근본적으로는, 유대교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셨을때 완전한 창조를 하셔서 그때부터 일할 필요가 없죠. 아담이 아무런 고민도 없으니까.. 이건 오해를 하시면 안되고 비유적으로 말씀드린건데, 근데 아담이 죄를 짓고 죽게 되면서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계속 일을 하게 되고 그런거죠. 결국 그러면 우리에게 뭐냐면 나중에 참 안식에 들어간다는건, 새 창조가 되면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면서 그때부터는 하나님께서 일할 필요가 없어지신다 라는 의미 같아요.
송진업: 그런데 그 설명은, 세대주의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신것 같아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사람들이 완전하게 되지 않았음을 내다보시고..
나상근: 아니 그건 아니죠.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이 보내지셨을때 예수님을 죽이라고 해서 보낸게 아니잖아요. 자유의지로 아담이 죄를 안지을 수도 있는거잖아요.
송진업: 그건 당연한거지 그런데 창세기 2장 1-3절에 쉬는게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개념을 6일을 불완전했기에 이렇게 했다 라는 후속조치를 취하셨다는 그런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거에요.
나상근: 그렇죠. 왜냐하면 안식하는 것 자체가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스탑이 아니라 레스트, 쉬는거잖아요. 하는 일 없이 쉬시는 거거든요. 결국 우리가 참 안식에 들어가는게 뭐냐하면 쉽게 이야기해서 레스트 하는거죠. 우리가 안식일에 일 안하고 쉬고 이러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는게 중요한 거거든요.
송진업: 그걸 일이라고 보면 안되나요?
나상근: 그건 일이 아니죠. 참 안식인거죠.
송진업: 여기 17절에 아버지께서 일하신다고 나오니까..
나상근: 그러니까 그게 새 창조 이야기죠. 일하신다는게 뭐냐하면 새 창조 일인거죠. 그래서 나중에 참 안식에 들어가는거죠.
송진업: 그런데 창세기 2:1-3절에 나오는 제 7일 안식하셨다 그건 그럼 어떻게?
나상근: 그건 나중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한거에요.
박중현: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거죠.
나상근: 그렇죠. 나중에 윤장로님 안식일에 관한거 들어보면..
송진업: 다 들어봤죠. 광야교회에서 당연히.
나상근: 거기에서 그런 이야기 나와요. 그때 창세기 때 나오고 신명기도 나오고, 그건 출애굽때도 나오거든요.
박중현: 최종택 교우님이랑 이렇게 두분이 좀 이야기 해주시죠.
송진업: 핵심을 이야기하자면 예수님이 죄인의 대표인, 병자를 고치셨잖아요. 그렇게 해서 아버지도 이렇게 일하시니까 나도 이렇게 일을 한다.
박중현: 그건 죄에서 해방시켜줬다는 의미가 있는것 아닐까요?
송진업: 다 포함되는거죠
박중현: 그게 더 큰 주제 아닐까요?
송진업: 아니, 크든 작든 간에, 다 통틀어서 우리 영혼만 구원합니까? 나중에 우리 육체도 구원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육신도 중요하고, 영혼도 중요하고 그렇잖아요. 사람이 영혼만 있나요 육체도 있지. 그래서 지금 38년 병자를 고치신 것은 그것을 다 포함한거라고 봐요. 그래서 이 사람을 새롭게 온전하게 만든거지. 근데 정애자 선생님이 딱 이건 병자는, 죄인의 대표를 말한거다 라는, 지난주에 공부한 부분에 나오듯이 유대인의 대표, 왕의 대표, 그거와 같은 맥락 같아요.
박중현: 저도 어떻게 보면 4장에 사마리아 여인..
나상근: 그 두가지를 보셔야 되요. 니고데모를 선택한거하고 사마리아 여인을 선택한거하고요. 니고데모는 유대인 중에서도 최고봉이잖아요 사마리아라고 하는건 이스라엘에서는 최하층이거든요. 예수님께서도 다섯 남편에 대해서 말하면서 사마리아를 무시했잖아요. 그만큼 사마리아 종교 자체를 저질로 보신거죠. 그래서 니고데모는 유대인중에서도 최고봉이고,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 사람들에 있어서는 최하층의, 그 두가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말을 하신거죠.
박중현: 저도 대표성에 있어서는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개인적으로 사마리아 여인하고 병자하고 공통점이 뭐가 있냐면, 새로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라고 해야하나? 그 회복에서 안식을 누리잖아요.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님께서 너가 내가 메시야인줄 알았으면 나에게서 구했을거라고, 그러니까 병과 관련된건 병과 관련해서 해석해야겠지만, 이 병자도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관계에서 보면, 사마리아 여인과 회복 차원에서는 똑같은 안식에 이르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같은 경우에는 병자가 죄로 인해 생긴 병이라고 생각해볼때 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바로 참 안식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17절에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일하신다라고 하신건 계속 세상적으로 구원하는 사역을 말하는것이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일을 나도 지금 하고 있다 라는 뜻인것 같습니다.
정애자: 그게 7째 날에 하신 일이잖아요. 그게 진짜 쉬었다 이런게 아니고, 상징적으로 새 창조의 사역을 계속 하신거지. 무슨 말 그대로 쉰게 아니죠. 아까 그거 여쭤보셨잖아요. 그래서 보니까 그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어요. 그게 안식의 의미이고, 새창조의 의미이죠. 그래서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스탑이 아니고 계속 일하시는거지. 그래서 새창조로 보고 안식으로 보면 더 이해가 잘 되는것 같아요.
박중현: 구원 자체가 안식이니깐요
정애자: 그렇죠. 구원사역 자체가 안식이니까.
송진업: 조장로님 코멘트 없이 나가셨나보네요
정애자: 아니다 아직 안 나가셨다.(하하)
송진업: 최선생님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최종택: 아니에요. 아까 중요한 말씀 다 하신것 같던데..
송진업: 그러면 정애자 선생님은요?
정애자: 아까 저도 정리 잘했죠?
박중현: 네 잘하셨어요. 아까 정애자 선생님이 질문하시던거 다시 말씀해 보시죠.
정애자: 아까 18절이 왜 19절하고 연결된다고 그랬던게, 안식일을 범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로 불러서 자신을 동등한 위치로 놓았다. 그래서 그 권위를 말씀하신거라서 그런것 같습니다.
박중현: 그럼 그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도 될까요?
정애자: 네
(19-29절)
박중현: 송진업 교우님이 두번째 단락에 질문이 많다고 하셨는데(웃음)
송진업: 아, 2주만에 하는 거라서요. 제가 카톡방에 올렸죠? 진실로 진실로 라는 단어가 3번 정도 나오는데, 제가 다 찍어서 올렸거든요?
나상근: 이게 카톡방에 그게 있는데 자꾸 지워져서요.
박중현: 카톡방이 중요한데.
송진업: 제가 한번 볼게요.. 왜 요한복음에 진실로 진실로 라는 말을 왜 썼냐.
정애자: 맥 시리즈에 답이 나오더라구요.
송진업: 그리고 22절에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오직 아들, 나 자신에게 맡기었다. 물론 다 답이 있지만 무슨 심판일까? 라는게 제 두번째 질문이고, 24절에도 진실로 진실로 두번 나오네요. 이 패턴이 계속 나와요. 그리고 25절에도 진실로 진실로 라는 말이 나오고, 그리고 25절에 듣는자는 살아나리라 라며 아버지께서 생명이 있음과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라고 나와있고, 여기 생명이라는 게 무엇인가? 라는게 3번째 질문이고,
박중현: 일단 하나씩 할까요?
나상근: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하는걸 잘 안하시죠. 인자라는 말이 처음 나오고, 제일 처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7개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과연 누구냐, 하나님과 그 아들이 동등하다 라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접근해야 하는거죠. 아들이라고 하는게 그 개념을 잡을때 단순히 아들이라고 하면 안되고 우리가 아들이라고 할때 무엇을 남겨줍니까?
송진업: 유산? 상속?
나상근: 네, 상속을 남겨줍니다. 아들이라는 개념은 상속이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당연히 아버지를 보고 그대로 하는것이기 때문에, 상속하는 개념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을 잡고 있으면..
박중현: 일단은 질문하는 것에 대해 대답하는걸로 진행을 해보죠.
송진업: 뭐에요? 맥시리즈에는 뭐라고 나왔어요?
정애자: 맥시리즈에서는..
송진업: 어이구, 우리 상익 형제 왔어요.
(일동 웃음)
박중현: 일단 송진업 교우님 첫번째 질문부터 답해보죠.
송진업: 우선 진실로 진실로 라는 부분이 두번 나오거든요? 24절에도 25절에도 나오는데.. 요한복음에도 많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중요한걸 이야기 할때 쓰는 것 같은데,
나상근: 중요한걸 나타내기보다, 우리가 항상 아멘 아멘 하는 것 자체가 진실로 진실로 이잖아요? 이게 뭐냐 하면은, 예수님이 자신을 메시야로 나타내는 간접적인 표현이다 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멘 하는거는, 그만큼 권위를 갖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기도쭉 한다음에 아멘 이라고 하면서 기도하지, 옛날 초대교회에서도 아멘하지, 예수님만 처음부터 아멘 하시거든요? 먼저 아멘아멘 하고 쭉 나가는게 그만큼 예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거라고 생각해요.
박중현: 잠깐만 근데 질문의 요지가 뭐죠? 그러면 진실로 진실로..
송진업, 정애자: 왜 이 표현을 자주 반복해서 썼냐 이겁니다.
정애자: 맥시리즈에서는 오직 예수님만 쓰셨다고 하네요. 아까 나상근 교우님이 든 메시야 라는게 적절한 표현같아요. 근데 여기는 오직 예수님께서 쓰신 진실로 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라는 맹세와 동등한 말이래요. 그리고 예수님만 이런말을 쓰셨다니까.
송진업: 저는 이 강의를 에스라에 조성민 교수님한테서 들었는데요, 뭐냐면 이게 선지자적 정형어구래요. 그러니까 같은 이야기에요 사실. 나선생님이 하신 말씀하고..
나상근: 그리고 여기서 인자라는 말이 있잖아요. 27절에 보면 아들이 인자이기 때문에, 메시야라는 표현인거죠.
송진업: 상익 형제, 늦게왔는데 환영하고, 1절부터 18절까지 끝났고 문단 나누기는, 19-29절, 30-47절까지 이렇게 들어갔어요.
임상익: 지금은 몇절하고 있는거죠?
송진업: 19절 하고 있어요.
박중현: 진실로 라는 표현을?
정애자: 예수님만 쓰셨대요.
박중현: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인데, 송진업 교우님은 왜 한번이 아니고 반복적으로 했냐? 라는 거 아닌가요?
나상근: 우스개소리를 하자면, 중생을 강조하니까(하하)
농담이구요, 중요한 걸 강조하기 위해서 하는것 아닐까요?
송진업: 네, 중요한걸 강조하기 위해서죠.
박중현: 네 강조하기 위해서.
송진업: 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두번이나 말씀하실까 라고 했을때 중요한걸 강조하기 위해서 말씀하신거죠.
상익 형제 어때요?
임상익: 저도 그렇게 강조하는 차원에서 말씀하신것 같아요.
송진업: 역시, 상익 형제가 오니까 너무 좋네.
(일동 웃음)
정애자: 근데, 강조 정도가 아니고, 나상근씨 말씀에 의하면 메시야 로서의 표현이다. 여기 제목이 권위잖아요.
나상근: 내가 메시야다 아멘 아멘 이러는게 예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박중현: 두가지 다 이렇게 봐도 되겠네요. 두번째 질문은 무엇이죠?
송진업: 두번째 질문은 22절에 대한 질문인데,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시지 않고 심판을 아들에 맡겼다는 이야기인데..
나상근: 우리가 그럼 다니엘서를 찾아볼까요?
송진업: 아니요 여기 27절하고 30절에도 나와요 심판에 대한 내용은… 그럼 이 질문 말고 다른 질문할게요. 26절에 있는 질문, 하나님 속에 있는 생명이라는게, 무엇인지 자기 언어로 표현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육체적인 생명을 이야기하는건지, 아니면… 여기서 분명히 생명과 심판을 대비해서 이야기 하는듯한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토론 좀 해 보고 싶어서요. 상익 형제 어때요? 26절에 있는 생명이 뭐에요? 사람 생명인가요? 의사니까 잘 알겠네
(일동 하하)
임상익: 그건 아니구요, 여기서 보면 25절에 죽은자들 이라는 표현도 나오고, 살아가리라 라는 표현도 있고, 생명이란 단어는 우리가 지금까지 계속 다루었던 빛과 어둠, 이런 의미인것 같아요. 생명은 곧 빛이고, 이 빛이 곧 아들인 나에게도 있고 또 나아가서 27절에, 여기서 메인 토픽이 아들의 권한이잖아요? 나한테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 이런게 약간 메인 토픽인것 같습니다.
박중현: 생명을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조성환: 태초에 창조하실때, 사람한테 생령을 불어넣으셧으니까, 유대인들은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라는것을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것 같아요. 생명이 여호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송진업: 그러니까 논리가 22절부터 계속 심판 이야기 하거든요, 그러면서 생명이 끼어 들었는데, 심판 이야기가 30절까지 나오거든요.
조성환: 심판 이야기하다가 생명 이야기를 왜 했냐?
송진업: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대비되는 이야기로서 우리에게 메세지를 주는 거죠.
나상근: 생명과 심판은 하나님의 권한이기 때문에 결국 이 이야기를 하는게, 예수님이 심판한다, 생명을 준다는걸 이야기 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는걸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박중현: 근데 19절이 왜 들어갔을까요? 19절하고 29절이 병 고치는 내용인데, 이게 왜 들어갔는지 한번… 보는 것도 괜찮겠는데요?
조성환: 전체적인 문맥에서?
박중현: 네, 심판이라는 말이 왜 이 병 고치는 사건 이후로 왜 나오는지
나상근: 요한복음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걸 강조하는 책이잖아요? 기적을 통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이 누구냐 라는..
박중현: 근데 5장안에서 보는것도..
정애자: 아까 제가 18절에 왜 19절이 나왔냐면.. 18절때문에 뒷부분에 19절이 나온거에요.
박중현: 그렇죠. 그거에 대해서 심판하고 생명을..
정애자: 근데 그렇게 하지 마시구요. 일단은 19절부터 23절까지만 보구요, 그것 딱 보고 24절 따로 보고, 25절에 진정으로 진정으로 보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게 왔다갔다 하니까 정신이 없네요.. 19절부터 우선 23절까지만 보면 안되요?
나상근: 그렇게 봐도 될것 같은데요?
정애자: 근데 앞부분을 보면 뒷부분이 이해가 되요. 앞부분에서 이해가 되면..
박중현: 저는 심판하고 생명하고 계속 29절에 이어진다는 느낌이 들어서..
정애자: 21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린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나도 살린다 지금~ 병자를 살리고 한다~ 이렇게 보면 더 쉬워요 지금~ 그리고 20절에도 아까 말씀하셨던거 참 좋은것 같아요. 상속자다. 상속자는 그 아버지는 상속자에게 다 알려주시잖아요. 그러니까 아버지도 하신걸 나도 하는데, 더 큰걸 보여준다. 이제 20절을 보면 또한 이보다 더큰 일을 아들에게 보여주셔서 너희들을 놀라게 하실 것이다. 근데 이게 뭘까 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박중현: 그 큰일이 무엇인지? 그것도 좋은 질문 같아요.
송진업: 나도 그 질문 하려고 했는데,
정애자: 우선 이것부터 보고 넘어가면 좋을거 같애요. 너무 왔다갔다 하니까..
송진업: 내가 요걸 놓쳤네~
박중현: 그러니까 23절까지 보자는 말씀인가요?
정애자: 네, 우선 이것부터 해결하고, 또 그 다음에 진정으로 진정으로 를 해결하고, 또 그다음을 해결하고.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 이걸 하나하나 다뤄보자는 거죠.
송진업: 상익형제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이 진정으로 진정으로 다음에 20절에 연결해서 정애자 교우님 질문은, 이보다 더 큰일이 무슨 일이냐 하는것이 질문이시죠? 저도 질문 메모한걸 놓쳤는데..
박중현: 질문한걸 대답해볼까요?
송진업: 혹시 대답 생각해 오신분 있으시면… 상익 형제는 더 큰일 생각 안해봤어요?
임상익: 더 큰일을 통해서 그 부분이요?
송진업: 네 그 부분이요.
정애자: 19절, 20절이 똑같은 말이에요. 나는 권한이 있는데, 이것보다 더 큰 일을 너희가 보면서 너희가 놀랄 것이다. 그게 21절이라는거죠. 그 큰일이
나상근: 더 강하게 이야기한게 아닐까요?(웃음)
정애자: 더 강하게? (웃음)
박중현: 그러면 그 앞에 그보다 더 큰에서 그 가 무엇일까요? 우선 그게 무엇인지..
정애자: 우선 크게 이야기하면 새 창조인데,
송진업: 여기 뭐라고 썼냐면, 구체적으로는 나사로를 살리고 나아가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십자가의 부활, 하나님의 나라 왕으로 다스리신 이렇게 메모했네요.
박중현: 이보다 에서 이가요?
송진업: 아니, 더 큰일이~
박중현: 우선 이부터 살펴보자는 거였어요.
송진업: 앞에걸 봐야죠. 아버지가 행하신 그것을 아들이 그대로 일을 하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셔서 아들에게 아버지의 일을 다 보여주신다는 거에요. 또한 이보다 더 큰일을 아들에게 보여주는데 이게 뭐냐는 거지~
박중현: 그러니까 이가 뭐냐는 말이었어요.
송진업: 그러니까 설명했잖아요.
박중현: 그러니까 이보다 더 큰일에 대해서 설명하신것 같아요.
정애자: 그러니까 그 이 에 대해서 설명한것 같다. 19절, 20절이 그 이 라는 뜻이라는 거죠.
송진업: 더 큰일은 이보다 를 받는 말이잖아요. 그 일을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인데, 그것에 대한 답변을, 작게는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을 내다보는 것이고, 나사로를 살리는 일이 뒷장에 나오지 않나요? 더 나아가서는 인류를 구원하시는 십자가,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 라는걸로 했다는거죠.
정애자: 그러니까 이 는 19절하고 20절을 이야기하는것이고, 더 큰일은 21절에 나오는데, 21절에 부활 이야기하는데, 저는 5장에서 본다면, 이 병자를 고친게 살린거에요. 죽은 자를 살린거에요. 이 사람 몸은 안 죽었잖아요. 몸은 안 죽었는데, 이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구요. 그쵸? 생명이 없는 사람이죠. 근데 이 사람을 안식일에 살린거죠. 이게 참 안식이 무엇인지 알려주는거랑 똑같은 것 같아요. 근데 또 살릴거다. 이런거죠.
송진업: 관주성경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더 큰일에 대한 관주는 요한복음 14장 12절에 붙어있거든요? 그쵸? 상익형제 그렇게 되어있죠?
임상익: 네.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나아감이다 라는게 핵심인거 같아요. 그래서 이것과 연관시켜서 생각을 해보자면..
송진업: 그러면 아버지께 간다 라는게 뭐에요? 구체적으로?
임상익: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이게 이제 그 십자가를 말씀하신게 아닌가 라는 걸 말씀하신것 같아요.
정애자: 아, 그러니까 본인이 부활한 그걸 말하는거 같아요?
임상익: 네. 그리고 그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 인류를 대표해서 돌아가시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측면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정애자: 요것뿐만이 아니고? 더?
임상익: 네, 그리고 저는 어디랑 연관 시켰냐면, 예전에 저희가 배웠을때 1장에 51절을 보면,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하면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것을 보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커넥션을 직접 볼거다. 이런말을 강조하시는것 같아요.
정애자: 응. 그렇구나
박중현: 최종택 교우님은? 너무 말씀을 안하셔서..
송진업: 역시 상익이가..
정애자: 너무 부담시키지 말아요.
조성환: 잘 이야기한것 같은데요.
송진업: 아니, 너무 열심히 공부해. 제일 열심히 공부해 오는것 같아. 적당히 읽어 오지도 않고.
임상익: 제가 요즘 시간이 많아서요.
조성환: 지금, 한창 불이 붙었어. 됐어요. 이정도면 어느정도 다 이야기 한거 같은데, 너무 많이 나갈 필요도 없고..
아까 말씀하신대로, 앞으로 일어날 놀라운 일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고, 예수님 자신도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모든 일들이 정말 놀라울 것이다. 이정도만 하면 됐지 뭐.
송진업: 상익 형제 왜 질문 안올려요? 왜?
임상익: 아, 좀 이따가 파트가 오면 그때 질문하겠습니다.
(일동 웃음)
박중현: 이제 24-29절 한번 이야기해볼까요?
임상익: 저는 29절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라고 되어있는데, 감은 잡겠는데요, 우리가 부활이라고 하면 저는 새창조, 구원 이런 긍정적인 이미지인데, 왜 심판의 부활 이라고 표현을 했을까가 궁금합니다. 정확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송진업: 참고서적 안봤어요?
임상익: 네 못 봤습니다.
정애자: 근데 28절 때문에 그 말씀을 하신것 같아요. 무덤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듣는데, 그니까 무덤속에 있다는건 이미 죽었다는 거잖아요.
임상익: 네 그렇죠.
정애자: 그니까 죽은 사람에는 두부류가 있는거잖아요. 믿었던 자와 안 믿었던 자, 그니까 믿는 사람은 생명을 얻은 거고, 둘다 부활을 해야 하는건데, 믿는 사람은 생명의 부활을 얻는거라고 보면 될거 같아요. 28절 그 부분 때문에 굳이 부활이라는 단어를 쓴것 같아요 29절에서.
임상익: 알겠습니다.
송진업: 그래도 좀 더 자세하게 누가 설명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요.
박중현: 저도 이게, 29절을 보면서 다른 책을 보기전까지는 되게 헷갈리더라구요. 그게 언제 죽고, 언제 심판을 하고 그러는지 헷갈렸는데, 주석을 참고를 하니까 도움이 되는데요, 우선 24,25절은 심판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 이거는 영적인 죽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느라고, 그니까 재림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셨을때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믿음의 심판을 하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하는 내용인 것 같더라구요. 25절에서는 죽은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말씀하셨을 때도 죽은 자들은,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아니고,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때가 온다고 그래서 영적으로 살아난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고, 28절 29절 같은 경우는 예수님이 재림시에 육체적인 부활때 잘 믿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을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이렇게 주석책으로 되어 있더라구요. 물론 23절에도 뒤에도 심판이라는 말이 나오긴 하는데, 이게 재림때인지 초림때인지 잘 구분해서 봐야 야 하는 것 같아요.
나상근: 28절이 이게 시제가 미래로 되어 있기 때문에 미래로 보셔야 되요.
박중현: 네 그니까 28절은 재림인것 같아요.
송진업: 다니엘서 12장 2절이 관주에 붙어있는데 읽어봤어요?
정애자: 상익형제 또 부를려고?(하하). 집중해서 공격하시는거 같애.
임상익: 읽긴 읽었는데, 메모를 안해놔서…
송진업: 12장 2절을 읽었는데 뉘앙스가 살아나는것 같다.
정애자: 그리고 땅속 티끌 가운데서 잠자는 사람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깨어날것이다. 이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은 수치와 함께 영원히 모욕을 받을 것이다. 똑같은 말씀…
박중현: 최종택 교우님도 말씀 한번 하시죠.
최종택: 재림하면,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부활만 생각하는데, 아까 이야기 하셨듯이, 재림때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결국은 하나님을 잘 믿고 뜻대로 잘 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것이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것이고..
정애자: 그리고 저는 참 재미있었던게 이게 너희에게 말하잖아요. 여기 있는 사람 모두에게 말을 하는 거잖아요. 그니까 유대인들에게 말하는 건데, 25절이 지난번에 이야기한 그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도 너희들이 지금 이때다. 지금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때다 등의 때에 대해서가 계속 나오거든요. 그니까 여기서도 지금이 때다. 내가 왔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때가 지금이다. 그러니까 때가 아주 강조가 되어서, 그니까 너희가 지금 내가 왔는데, 내가 지금 안식일에 고치고, 안식일의 의미가 이거고, 나는 이런 권위를 갖고 있다는걸, 아주 강조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진정으로 라는 말을 안 쓸 수가 없었던 거에요.
박중현: 저도 정애자 교우님 말하고 아주 많이 공감이 가는게,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쳤는데, 사람들이 이걸 보고 듣고 한게 아니라, 안식일을 왜 범했느냐,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나도 일한다 를 통해서 왜 하나님과 동등하게 자기를 놓느냐 라며 거부감을 나타내잖아요. 그래서 19절에 너희들이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것이고 생명을 얻지 못할것이다 라고 자연적으로 이어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니까 이땐데, 내 말을 들을땐데,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니까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임상익: 그니까 19절에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를 먼저 설명하신것 같아요. 그 다음에 병렬적으로 나는 하나님을 통해서 하는거고, 심판의 권한도 하나님께 받아서 하는거고, 이런 말씀을 계속 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 19절에서 대중들에게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 그리고 어떻게 내가 사역을 하는지를 설명을 하고 그 다음에 쭉 이야기 하시는것 같아요. 그렇게 이해하시면..
나상근: 그게 인제 27절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할 권한을 주셨다 그것은 아들이 인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니엘서에서 나오는 인자가 나다. 그게 메시야다.
박중현: 그럼 29절까지 장로님께서 정리를?
조성환: 네? 29절까지? 몇절부터?
박중현: 19절부터(일동 웃음)
송진업: 아이, 다음 문단까지 듣고 해요.
조성환: 그래, 마지막에 할게.
박중현: 그럼 30절에
(웃으면서 이러다가 참석 안하겠다 라는 외부의 목소리)
조성환: 아이, 갑자기 물어봐가지고(웃음)
(30-47)
박중현: 그럼 30절에서 47절까지 궁금한거 있으면 질문해보시죠.
송진업: 상익형제 늦게 왔으니까 질문 해보시죠.
임상익: 어… 사실 이 부분에서는 질문이 없습니다.
송진업: 그럼 다른분이 하시면..
정애자: 근데 30절을 굳이 따로 뒷쪽에 하는것보다 19절부터 말씀하신 그게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 뭐 이런 말들을 정리해주는 내용 아닌가요?
임상익: 30절이요?
정애자: 네, 30절이 앞부분을 간단하게, 내 말을 하나도 듣지 않는다.
최종택: 31절 아닌가요?
정애자: 아니요 30절이요. 30절부터 뒷부분으로 붙였거든요.
송진업: 우리 셋이 문단 나누기가 다 달라요.(웃음)
박중현: 다 다르기 때문에 제가 정한 문단으로 진행하죠. 30절은…
정애자: 이게 정리해서 그러므로~ 이렇게 하는 느낌이 들어서, 아, 근데 따옴표가 따로 있긴 하네요.
박중현: 네, 30절이 됐던지 31절이 됐던지간에 47절까지는 증거, 증언에 대한 이야기 같거든요.
나상근: 요한의 증언이 앞에서는 요한복음 처음 시작할때는 중요한것처럼 다루었는데, 여기서는 중요한게 아니고 더 큰 증언이 있다라고 왜 그렇게 했는지..
정애자: 뒷부분 말씀하시는거죠?
나상근: 네, 질문하라고 해가지고
(일동 웃음)
조성환: 증언 했다는거죠. 사실 근데 메시야가 더 큰거 아니야. 근데 유대인들이 깨닫지 못하는거지. 어떤 자기의 개인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는 아주 바로 깨닫지 못하고 눈이 가리워갖고..
나상근: 두번째는 37절 보면 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증언해 주었다.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은적도 없고 그의 모습을 본적도 없다 저기 출애굽을 보면 하나님을 봤다고…
조성환: 그니까 이 사람들은 영적으로 눈이 멀어있는거야. 유대인들은,
나상근: 그리고 예수님 세례받을때,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잖아요. 그쵸? 음성을 들었는데, 음성을 들은적도 없고 본적도 없다 라고 하잖아요.
임상익: 그게 메인 포인트가 38절인거 같아요.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조성환: 말씀보다는 그 외형적인거, 안식일도 이 사람들은 본질을 모르고, 안식일을 아무것도 안하는것만 머리에 꽉 차 있으니까 예수님이 책망한거지.
나상근: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정애자: 그 세부적인 상황만.. 엄청 관심이 있어요.
조성환: 그니까, 우리도 잘못하면 그렇게 되기가 쉬워. 너무 이, 율법만 따지면, 큰 걸 봐야 하는데….
박중현: 여기 요한복음 1:34절 같은 경우는, 이런말이 나오거든요, 이게 29절하고 이어지는건데,
송진업: 이게 세례 요한의 증거죠?
박중현: 네, 그렇죠. 요한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한다고 나와있잖아요.
송진업: 근데 2장 25절에 보면,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 라고, 사람에 대한 증거가 필요없다고 이야기 하시거든요, 그니까 요한의 증거와 5장에서의 증거를 보면, 하나님이 해 주신 증거라고 읽혀지는데?
나상근: 여기서 유대인들은 증언하는게 필요하잖아요. 요한의 증거도 있고 한데, 나는 요한의 증거를 신뢰를 하지 않고 하는 의미지, 요한의 증거가 배재되는것은 아닌거죠.
박중현: 일단은 네가지로 나뉘어 놓은거 같아요. 네 가지 예수님애 대한 증언.
나상근: 어떤 증언이죠? 말씀 증언…
정애자: 그니까 대답이요. 예수님의 증언이 있는데, 이걸 누가 증언했냐, 요한이 증언했다. 그게 나는, 하나님이 증언했다 나를…
박중현: 그게 두번째고, 세례 요한, 하나님..
나상근: 그 다음 말씀이죠.
박중현: 그렇죠. 성경이죠. 하나 더 있는거 같거든요? 나머지 한가지가 우리가 전체적으로 성경을 보면서 유의하면서 봐야 하는거 같더라구요. 그 한가지가 무언지….
정애자: 영광을 생각하는거요?
박중현: 그게 아니구요.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 30절에서 47절까지 네가지가 나오는데, 세가지가 아까 이야기했던 세례 요한, 그 다음 하나님, 그리고 말씀.. 우리가 누가복음할때도 모세와 모든 선지자가 성경이 나에 대해 기록했다 라고 할때도..
정애자: 네, 모세 5경…
박은주: 요한일서 5장 11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정애자: 그니까 이건 하나님이 증거하셨다는 거구요..
송진업: 근데 그거 말씀은, 예수님 자체를 말씀하시는거 같아요. 요한일서 말씀은..
정애자: 아, 내가 나를 증거한다?
송진업: 내가 나를 증거하는거죠.
박중현: 36절을 보시죠.
송진업: 이건 아버지의 증거죠.
박중현: 아니요. 후반절을 한번 봐 보시죠. 읽어보시면,
나상근: 아, 예수님께서 하셨던 기적?
박중현: 네 그렇죠. 예수님께서 하신 일. 예수님께서 표적을 통해서 하신 그 일이 나를 증거해주는 그런 말이거든요.
나상근: 보통은 자기를 증언하는건 의미가 없는데, 말 뜻 자체가 요한의 증언, 하나님의 증언, 말씀의 증언이게 되지만도, 이게 요한의 증언보다 나 스스로 보여주는 증언이 더 신빙성 있다 라는 말 같아요.
박중현: 네, 그러니까..
조성환: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영적으로 눈이 떠 있으면 이거 보면, 아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라는 걸 아는데, 지금 이 분이 누구인지 모르는거지, 안식일을 또 병자 치유하니까 트집잡으려고 하니까, 예수님이 생명을 살리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제일 중요한 일인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거지. 그러니까 지금 생명 살리는 일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거지만 내가 하는게 아니라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대권을 위임받아서 지금 예수님이 하는거잖아요 그죠? 그러면서 그 증거를 댈려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이 사람들은 계속 깨닫지 못하니까 반은 책망하고 반은 진리를 말씀하시는거 같아요.
박중현: 그래서 저는 여기 예수께서 가나 사건을 통해서든지, 나사로를 살리는 일이라던지 그런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통해서 메시야라는것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받아들여야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조성환: 이게 세번째 표적이거든? 병자 고치는 일이, 혼인 잔치 가나가 첫번째고 그 전에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것, 그리고 또 이 중풍병자.. 이런것들이 전부 영적인 의미가 있는것 아니에요. 영적으로 병든자, 죽은 자들을 살리는데, 어쨋든 그것이 하나님의 주 사역이죠. 생명을 살리는 일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거죠.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 역으로 말하면 심판하고 또 관련되는 말이기도 하고..
임상익: 순전히 예수님을 받아들이는게, 나의 주체적인 책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40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되어 있잖아요. 자기들이 오고 싶어하지 않는거죠.
조성환: 그럼, 아무리 설교를 줘도 이렇게 완악한 마음을 갖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적용이 안되는거죠.
임상익: 이 사례를 보니까 예수님께서 증언을 말씀하시면서 니가 나를 안 믿는거 아니냐. 이런말씀을 하시려는 것 같아요.
정애자: 그죠. 그 33절도 요한은 나를 증언했다. 하지만 너희들은 나를 안 믿었다 이거죠. 너희들은 그냥 즐거워하기만 했고, 어 그럼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걸 너희들이 안했다라는걸 하기 위해서 앞에 부분은 35절까지.. 근데 더 큰 증언은 내가 한 일들이다. 아까 말씀하신 그 일들.. 아, 이건 정말 하나님, 메시야만 하는 일인데 라고 되야 하는데 너희는 그걸 안 믿었다. 그리고 성경도 있는데, 너희들이 성경은 연구만 하는데, 그것도 바로 나에 대해서 증언을 하는데 안 믿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더큰 증언, 그리고 요한보다 더 큰 증언, 이렇게 말씀 말하고,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봐보면, 이게 다 있어요.
조성환: 그리고 44절에는 이제, 서로 자기들의 영광만 추구하는거야. 이 사람들은, 유대인들은 자기들 막 성경 많이 알고 율법 잘 지키고 이러는게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건데, 진짜 영광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인데 이걸 구하지 않고 자기 영광만 구한다는거죠.
박중현: 계속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파들을 나무랐던거 같아요. 너희들이 계속 너희들의 영광만을 추구했지, 진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 본문 뿐만 아니라 다른 본문에서도 계속 나오는것 같아요.
최종택: 그러면 32절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은 따로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나를 증언하시는 분이 구체적으로 뭐를 의미할까요?
송진업: 성부 하나님, 성령님?
조성환: 성령, 하나님 이겠죠?
최종택: 여기서는 성부 하나님을 의미하는걸로 봐야겠죠?
정애자: 네.
최종택: 그러면서 34절에 내가 이 말을 하는것은 내가 사람의 증언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만 너희들로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라고 했거든요. 그니까 그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 결국 하나님을 증거하는것을 바르게 받아들일때 구원이라고 하는것 같은거죠?
정애자: 그렇죠. 근데 여기 34절에 사람이라고 하는것은 요한을 가르키는 말 같아요. 여기 34절에 여기 사람은 요한인거 같아요. 33절을 말하는거 같아요.
임상익: 그렇게 연관을 지을 수 있을것 같아요.
정애자: 네, 33, 34가 연결이 되는.. 바로 요한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임상익: 그리고 여기서 제일 큰 주제가, 예수님을 증언하시는 분이 성부 하나님이신데, 여기 유대인들이 그거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일려고 하지도 않고 또 성경을 잘못 공부하고 있다고도 나와 있더라구요. 여기 43절에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에서 관주 찾아보니까 다른 사람이 거짓 메시야 라고 나오더라구요. 그니까 이 사람들이 잘못 공부하고 있다는걸 말씀하시는거고 책망이신것 같아요.
정애자: 그니까 비꼬는 것도 있어요 지금.
임상익: 네
정애자: 너희는 지금은 내가 하나님이 보냈다고 하는데도 안믿지? 근데 다른 사람들이 말하면 너희들이 쫓아가잖아.
그니까 전혀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거지…
조성환: 그래, 이제 다 이제 전체적인 흐름과 방향은 잘 잡혔죠 그지? 그래서 안식일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또 자신이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것과 관련이 있는거잖아요. 사람을 살릴려고 생명을 주는 사역인데, 그 사역의 기원은 결국 하나님 그죠?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 되시고 이런걸 예수님에게 그걸 사실 위임한거나 마찬가지죠 그죠? 생명 구원 사역을.. 그것을 어떻게 보면 증언하고, 아버지와의 관계,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과 참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것을 언급하시면서 증언하는 것들이, 뭐…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생명의 주인이라는게 계속 강조되는데, 1장부터 쭉 하면서 5장은 안식일 나오죠? 6장은 또 유월절을 가지고 절기를 가지고 절기를 새롭게, 유대인들이 절기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고 오해하고 있는것에 대해서 일깨워주면서 영적인 진정한 의미를 계속 들춰내는것이 요한복음에 계속되는거니까 그건 전체적인 흐름을 감안하시면서… 또 요한복음이 좋은게 이렇게 장마다 딱딱 주제별로 한가지씩 나오니까 공부하기에 좋은것 같아요.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정애자: 그러는것 같다.
(끝)
(다음 공부는 2주후에 하기로 하였습니다. 진도는 일단 6장 전체 다 공부해 오는걸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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